[오늘의 설교] 생존이냐 신앙이냐

입력 2012-02-16 18:13


사사기 2장 11∼15절

여러분 목숨이 걸려있는 생존의 문제와 신앙, 이 둘 가운데 무엇이 더 중요할까요? 물론 둘 다 중요하지만 둘 중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한다면 어떤 쪽을 선택해야 할까요?

오늘 본문 속에서는 ‘생존이냐 신앙이냐’의 갈림길에서 안타깝게 생존을 선택한 무서운 결과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40년 광야생활을 끝내고 가나안 일곱 족속을 몰아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삶 자체가 기적입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전능하심을 경험한 민족이 정복 1세대가 죽자 바알과 아스다롯 등 우상을 섬김으로 영적으로 초토화 되고 맙니다. 신앙이 아닌 생존을 선택한 것입니다. 신앙을 선택해야 할 우리에게 참 신앙은 무엇일까요?

첫째, 참 신앙은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갈 때 세상에 영향을 주면서 살든지 세상의 영향을 받으며 살든지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이라고 선언했던 것입니다.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살아야할 하나님의 사람들이 오히려 가나안의 우상에 영향을 받으며 우상의 영향권 앞에 변질되고 만 것입니다. 그 이유는 생존의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에 들어왔을 때 농사짓는 법을 전혀 몰랐습니다. 가나안의 기후와 풍토에 적응하면서 농사짓는 기술을 배우면서 가나안의 나쁜 문화, 풍습, 풍토 그 속에 담겨진 우상의 뿌리들을 접하게 된 것입니다.

둘째, 참 신앙은 절대의 원칙과 절대의 철학을 가져야 합니다. 고통과 불이익이 오고 일이 실패한다고 할지라고 흔들릴 수 없는 절대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리라는 원칙과 절대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방법대로 하나님이 원하는 그 길만을 걸어간다는 절대의 의지가 있어야 참된 신앙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절대화 시키고, 기도, 말씀의 진리, 성령 충만을 절대화 시켜야 승리할 수 있습니다. ‘절대 말씀’ ‘절대 기도’ ‘절대 성령’ ‘절대 선교’ ‘절대 감사’ ‘절대 주일성수’…. 타협할 수 없는 신성불가침의 절대입니다. 다른 부분은 다 양보해도 양보할 수 없는 최후의 보루를 남겨 놓아야 합니다.

셋째, 참 신앙은 오늘의 고통을 품고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가나안에서 농사를 지어야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고통의 시간, 인내의 결단이 필요했지만 타협한 것입니다. 눈으로 보고, 쉽고, 간편한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희망의 ‘봄’은 봄에 시작된 것이 아니라 한겨울 얼어붙은 땅 속에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절망과 고통의 순간에도 희망을 노래하며 기도하는 사람이 신앙인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고통의 바다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신앙을 선택하며 살아갈 때 그것은 고통 그 자체입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닥치는 고통을 끌어안고 기도할 때 고통은 변화를 갈망하고 소원을 갖게 하는 하나님의 사랑의 선물입니다. 신앙 안에서의 고통 오늘의 아픔을 새로운 인생의 탄생과 변화 와 아름다운 회복의 기회가 됩니다. 진정한 고통이 없다면 환희도 없고 진정한 아픔이 없다면 서로 따뜻하게 품는 사랑도 없을 것입니다. 고통은 피해야할 대상도 싸워야할 대상도 아닙니다. 오히려 믿음 안에서 품고 나갈 때 축복으로 역전됩니다. 생존이냐 신앙이냐? 고통이 있어도 신앙을 선택하는 것이 희망입니다.



김만배 목사(서울주사랑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