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마가를 찾아서] (8) 세상에서 당하는 환난
입력 2012-02-16 22:43
‘환난 당하나 담대하라’… 예수님, 마가의 집 다락방에서 제자들 격려
예수께서는 세상에 계실 때에 이미 그 제자들에게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들이 환난을 당할 것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깃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 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마 5:11∼12)
이는 빛을 만난 어둠의 통증 때문이었다.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요 3:20)
그리고 마가의 집 다락방에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격려하셨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
마가의 집 다락방에서의 성령을 받은 후 제자들이 세상에 나가 복음을 전할 때 그들을 따른 이들은 오직 가난한 자들과 병든 자들이었고, 산헤드린 공회를 비롯하여 세상을 주도하는 모든 세력들은 복음을 미워하고 박해했다.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행 4:18)
초대 교회의 제자들이 세상에 나가 복음을 전할 때 가장 강력한 박해 세력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유대인들이었다. 예수께서 육신으로 세상에 오실 때 그분은 마리아의 몸을 통해 태어나셨다. 그 마리아의 몸이란 곧 유대인의 혈통을 말함이었다. 그러나 예수께서 ‘나로 말미암아’라고 말씀하셨던대로 그 유대인들은 제자들이 가는 곳마다 돌을 던지고, 고발하고, 이를 갈며 죽이려 했다.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마 10:36)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먼저 예루살렘과 유대의 박해를 피하여 떠나 모여든 곳이 수리아의 안디옥이었다. 레바논 산지에서 발원해 지중해로 흘러들어가는 오론테스강 유역의 안디옥은 이미 알렉산더의 시대부터 동방 경영의 거점이었다. 그가 죽은 후 이 지역을 관할한 셀류코스 장군은 안디옥의 외항 셀류기아를 건설하여 동서 교역의 중심지로 삼았다. 로마 제국 역시 이 안디옥을 중요한 군사적 요충으로 활용했다. 하나님은 이 세상 세력의 중심지를 또한 온 세계에 복음을 전파하는 선교의 거점으로 삼으셨던 것이다.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행 11:26)
그리스도인 즉 헬라어의 ‘크리스티아노스’는 로마어의 ‘크리스티아누스’에서 온 것으로 이는 곧 그들이 하나의 세력을 이루었다는 뜻이었다. 즉 어떤 이름에 ‘이아누스(-ianus)’를 붙이면 그의 무리, 그의 당을 의미한다. 폼페이우스의 군사는 폼페이아누스, 황제의 군대는 카이사리아누스, 헤롯당은 헤로디아누스였다. 그리스도의 군사가 된 그리스도인들은 안디옥을 거점으로 세상 세력과 싸우게 되었다. 당시 로마 제국과 그들의 권력을 받쳐 주는 우상의 문화는 아직 교회의 세력을 그들과 맞설만한 위협적인 존재로 여기지 않고 있었다. 교회를 박해하는 세력 중 가장 잔혹한 쪽은 유대인들이었다. 그러나 바울을 비롯한 안디옥 교회의 선교사들은 가는 곳마다 유대인 회당을 먼저 방문하여 박해를 자초했다.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르러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앉으니라”(행 13:14)
비시디아의 안디옥은 셀류코스의 아들 안티오쿠스 Ⅰ세가 세운 성읍이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늘 바울과 바나바를 적대시했고, 복음을 받아들이는 쪽은 늘 헬라인 들이었다. 헬라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필요한 것은 헬라 문화에 대한 지식과 이해였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시 알렉산드리아의 대학자 필로와 비견되는 젊은 학자 바울을 회심시켜 헬라권 선교사로 쓰신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을 전할 때 그들이 맞서야 했던 것은 박해하는 유대인 세력과 헬라의 문화, 그리고 로마의 정치 세력이었으나 그들이 싸워야 하는 또 하나의 강력한 방해 집단이 있었는데 그것은 ‘마술사’의 세력이었다. 성령 강림 이후 가장 뛰어난 전도자였던 빌립 집사와 예루살렘에서 감동적인 설교와 표적으로 많은 결신자를 낸 베드로도 사마리아에서 마술사와 맞섰다.
“그 성에 시몬이라 하는 사람이 전부터 있어 마술을 행하며 사마리아 백성을 놀라게 하며 자칭 ‘큰 자’라 하니”(행 8:9)
마술은 본래 속임수를 기본으로 하는 것이다. 마술의 공연은 크게 거리 마술과 무대 마술과 광장 마술로 구분한다. 거리 마술은 오랜 훈련으로 손에 익힌 속임수의 재주를 사용하고, 무대 마술은 보다 규모가 크고 정교한 설비와 장치를 필요로 한다. 광장 마술은 많은 사람들이 모인 공개된 장소에서 건물이나 코끼리를 사라지게 하거나 공중을 나는 등의 묘기를 보이는 것이다.
감쪽 같은 속임수로 사람들을 즐겁게 하거나 감탄하게 하는 것은 나름대로 노동의 피로를 풀어주는데 필요한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람들을 속이는 것에 몰두하다가 그것이 자신의 능력인 것처럼 착각하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지금까지도 일부 학자들은 속임수에서 시작된 마술과 연금술이 인간의 창조력을 개발하고, 과학의 발달을 가져왔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은 현상이다.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다 따르며 이르되 이 사람은 크다 일컫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하더라”(행 8:10)
실제로 고대의 바벨론과 애굽의 마술사들은 자신들의 속임수를 마치 신적인 능력인 것처럼 과시했다.
“바로도 현인들과 마술사들을 부르매 그 애굽 요술사들도 그들의 요술로 그와 같이 행하되 각 사람이 지팡이를 던지매 뱀이 되었으나 아론의 지팡이가 그들의 지팡이를 삼키니라”(출 7:11∼12)
마술사들은 사람의 영혼을 사냥하기 위해(렘 13:18) 악령을 부리는 흑마술까지 도입했다. 문자를 숫자로 바꾸어 유대인 마술사들이 예언과 점술의 수단으로 활용했던 수비학도 모두 미혹의 수단이었다. 피타고라스는 그 유대 카발라의 수비학을 밀교적 수단으로 사용했고, 티아나의 아폴로니오스도 흑마술을 구사하며 자신이 예수를 대신하는 메시아인 것처럼 위장했던 것이다.
“점쟁이나 길흉을 말하는 자나 요술하는 자나 무당이나 진언자나 신접자나 박수나 초혼자를 너희 가운데에 용납하지 말라”(신 18:10∼11)
폭군 칼리굴라 시대의 말기인 AD 40년 로마 제국의 속주들 중에서 유대인 폭동의 시초가 된 것은 바로 안디옥의 ‘곡마단 전쟁’이었다. 곡마단이란 곧 곡예와 마술을 기본으로 하는 공연단이었다. 오늘날에도 철학과 수학 등 문화의 바탕이 되는 인문학이 있음에도 공연 문화가 이 시대의 문화를 대표하는 것처럼 행세하고 있듯이 당시에도 극장을 중심으로 하는 공연 문화가 대중을 사로잡고 있었다. 오늘날처럼 눈과 귀를 사로잡는 수단이 다양하지 않았던 그 당시에는 경기장의 전차 경주와 연극장의 무대 공연이 볼거리의 전부였다.
헬라 시대부터 도시마다 생기기 시작한 부채꼴 모양의 연극장은 음악과 연극 공연을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권력자들이 연극장의 건설에 힘썼던 것은 음향 전파가 잘 되도록 설계된 연극장이 대중을 사로잡는 자신의 연설장으로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평소에 연극장은 감동적인 연극이나 음악의 공연보다 곡예와 마술의 공연장으로 더 많이 활용되었고, 어느 틈엔가 곡마단은 무시할 수 없는 문화 권력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따라서 도시마다 있는 연극장을 먼저 점령하는 공연의 주도권도 큰 이권의 하나가 되었다.
당시 각 도시를 순회하며 공연하는 곡마단 세력은 헬라계와 유대계가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었다. 알렉산드리아에서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곡물 거래의 주도권을 놓고 첨예하게 대립한 것처럼 모든 도시에서 유대계 곡마단과 헬라계 곡마단은 서로 경쟁하며 견제하는 양대 세력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그런 두 개의 세력이 마침내 동서 교역의 중심지이고 로마 제국이 세계를 경영하는 거점이었던 안디옥에서 크게 충돌하게 되었다. 문화 권력의 주도권을 놓고 서로 다툰 그 싸움의 규모와 방법이 너무 참혹하여 전쟁이라고 불리웠을 정도였다.
“시몬이 사도들의 안수로 성령 받는 것을 보고 돈을 드려 이르되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하니 베드로가 이르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행 8:18∼20)
마술사 시몬은 앙심을 품고 사마리아를 떠났다. 마술사 세력의 중심이 된 시몬은 후일 로마에서 베드로와 다시 만나 세기의 대결을 펼치게 된다.
김성일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