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역사 ‘정동제일교회 직장인수요예배’ 참석해보니… 점심보다 영성으로 배부른 직장인의 ‘主요일’
입력 2012-02-15 21:02
15일 오전 11시50분 서울 정동제일교회 문화재예배당. 서울시청과 JP모건, SK커뮤니케이션즈, 농협, 시티은행, 중앙일보 등 교회 인근 직장에서 근무하는 회사원들이 점심 자투리 시간을 내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잔잔하게 울려 퍼지는 멘델스존의 ‘프렐류드와 푸가 2번’ 오르간 연주가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었다. 붉은색 목도리를 두른 20대 여성직장인, 가죽장갑을 끼고 온 40대 여성, 검은색 서류가방을 든 중년신사도 자리에 앉자마자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는다.
이곳은 아펜젤러 선교사가 1897년 세운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예배당이다.
12시 7분 예배가 시작됐다. 점심시간을 이용한 짧은 예배이기 때문에 찬양도 1절과 2절만 부른다. 기도자는 “때가 악하니 무엇보다 우리의 마음을 지켜 달라”면서 “직장에서 소금과 빛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틈틈이 말씀을 읽고 기도하는 시간을 잊지 않게 해 달라”고 간구했다.
강단에 선 송기성 담임목사는 누가복음 12장 말씀을 본문으로 “염려와 불안을 주께 맡기고 하나님 중심의 삶, 천국지향의 삶을 살자”고 독려했다. 예배는 40분 만에 마쳤다.
교회는 직장인들에게 점심식사를 무료로 대접하고 있다. 빠른 식사를 위해 떡국이나 육개장, 칼국수, 개인용 김치를 식탁에 미리 준비해 놓는다. 여행사에서 근무하고 있는 이효선(51·여)씨는 “일 때문에 출석하는 교회에서 수요예배를 드린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면서 “수요일 점심시간을 이용해 회사 근처에서 예배를 드리고 식사도 할 수 있어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씨는 “회사에서 11시55분쯤 나오는 데 예배와 식사를 마치고 나면 늘 시간이 촉박하다”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중앙일보 신협에서 근무하는 김형훈(57)씨는 “서울 등촌장로교회에 출석하고 있는데 20년 넘게 수요예배를 드릴 수 있다는 게 축복”이라면서 “이름도 빛도 없이 도와주시는 교회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감사의 뜻을 표했다. 김씨는 “과거 삼성이나 효성, 대한항공 등에서 오는 대기업 종사자들로 많을 때는 270명이 모일 때도 있었지만 본사를 강남으로 이전하는 기업이 생기고 IMF 구제금융 이후 계약직 사원의 비중이 커지면서 젊은층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동제일교회의 수요직장인예배는 30년 역사를 자랑한다. 1982년 5월 대법원 직원들을 대상으로 시작된 예배는 점차 일반인에게 확대됐다. 인근 새문안교회, 서소문교회도 다른 날짜에 예배를 드리고 있어 직장인들에게 예배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수요직장인예배위원장 한일숙(56·여) 권사는 “매주 수요일 150∼200여명의 직장인이 교회를 찾는데 조금만 시간이 늦어져도 식사를 못하고 가시는 분들이 생기기 때문에 시간 엄수가 생명”이라고 말했다. 송 목사는 “점심시간을 포기하고 영적 갈급함 때문에 모인 직장인들에게 예배공간을 개방하고 식사를 대접하는 것은 교회의 당연한 일”이라면서 “매주 목요일 저녁 인문학 강좌를 개최해 직장 동료를 전도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오후 1시 식당에서 직장인들이 물밀 듯 빠져나가자 노숙자 200여명이 차례대로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교회가 전도와 나눔의 열린 공간 역할을 톡톡히 하는 셈이다.
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