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한 삶들 어깨 맞댄 곳 먼동은 봄을 싣고 옵니다… 1980년대 풍경 오롯한 묵호 ‘논골마을’
입력 2012-02-15 18:56
‘사람들은 봄은 산으로부터 온다고 한다. 묵호의 봄은 시린 손 호호 불며 겨울바다에서 삶을 그물질 하는 어부의 굳센 팔뚝으로부터, 신새벽 어판장에서 언 손 소주에 담아가며 펄떡이는 생선의 배를 가르는 내 어머니의 고단한 노동으로부터, 언덕배기 덕장에서 찬바람 온몸으로 맞이하는 북어들의 하늘 향한 힘찬 아우성으로부터 온다.’(논골마을의 벽화 중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기항지였던 묵호는 묵호항이 내려다보이는 언덕배기에 위치하고 있다. 지긋지긋한 가난을 피해 바다도 검고 물새도 검은 묵호(墨湖)로 모여들었던 사람들. 그들은 다시 그 가난을 피해 죽어서 혹은 살아서 묵호를 떠났다. 그리고 갈 곳 없어 남은 사람들은 짙은 가난의 그림자 속에서 시린 손을 호호 불며 봄을 기다리고 있다.
논골마을로 불리는 강원도 동해시 묵호진동은 1980년대 풍경이 오롯한 달동네. 일제강점기 시절인 1941년 어업전진기지인 묵호항이 개항하면서 마을이 형성됐다. 지아비는 고된 뱃일을 나가고 지어미는 오징어 배를 갈라 자식들 공부시키는 게 유일한 낙이자 희망이었다. 훗날 시멘트공장과 무연탄공장이 들어서면서 마을은 더욱 북적거리게 됐다.
전국에서 모여든 그들은 묵호항이 지척인 바닷가 언덕의 손바닥만한 공간에 벽돌을 쌓고 슬레이트를 얹었다. 당시에는 하룻밤 자고 나면 무허가 주택이 몇 채씩 들어섰다. 미로 같은 골목길이 두 사람이 어깨를 나란히 하기도 힘들 정도로 비좁고 가파른 이유다. 이 때문에 요즘도 난방용 연탄을 지게에 지고 오르는 달동네로 남았다.
논골마을 주민들은 명태와 오징어를 담은 고무 함지박을 지게에 지거나 머리에 이고 고단한 한숨과 함께 마을에서 가장 높은 묵호등대 주변 덕장을 오르내렸다. 당연히 흙길은 함지박에서 흘러넘친 물로 늘 질퍽거려 장화를 신고 다녀야했다. ‘마누라나 남편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 산다’는 말은 이래서 생겨났다. 논골이라는 지명도 길이 논처럼 질퍽거린 데서 유래됐다.
심상대의 소설 ‘묵호를 아는가’의 무대인 논골마을이 최근 배낭을 둘러멘 나그네들의 여행지로 떠오르고 있다. 잃어버린 묵호를 재발견하자는 취지로 마을주민들이 중심이 돼 2010년부터 담과 벽에 묵호 사람들의 살아온 이야기를 벽화로 그리는 사업을 통해 희망을 합창하고 있기 때문이다.
벽화가 그려진 논골담길은 논골3길과 논길1길. 허름하고 누추한 집들이 서로 처마를 맞댄 사이로 꼬불꼬불 이어지는 벽화골목은 ‘묵호를 아는가’에서 아낙들이 서로 머리채를 잡고 악다구니를 퍼붓던 곳. 윗집 마당이 아랫집 지붕보다 높은 마을에는 논골마을 사람들의 옛 이야기들이 소박한 벽화로 되살아났다.
밤바다를 수놓은 오징어잡이배의 어화, 빨랫줄에 매달아 놓은 오징어, 화사하게 피어난 매화, 동트는 동해, 마을사람들이 신고 다니던 빨간 장화, 고무 함지박에 담은 오징어 명태 연탄, 옛 논골상회에 그려진 아이스케키 냉동고 등의 그림이 이곳에서는 마을의 역사를 대변하는 아이콘이다. 친절하게도 어린아이 작품 같은 벽화 옆에는 최첨단 QR코드도 그려져 미소를 머금게 한다.
논골담길의 벽화를 자세히 보면 웃음이 터져 나온다. 남녀 학생이 숨어서 키스를 하려고 하자 고무 함지박을 머리에 이고 가던 여학생 어머니가 손가락질을 하며 소리를 지르는 벽화가 대표적이다. 골목길을 걷다 맞닥뜨리는 리어커 벽화는 진짜로 착각할 정도. 등대 아래에는 억척스럽게 살아온 논골마을 아낙들을 상징하는 원더우먼 벽화가 씩씩한 모습으로 나그네들을 맞는다.
벽화골목들의 종점인 언덕 가장 높은 곳에는 묵호등대가 늠름하게 서 있다. 1963년 6월 첫 불을 밝힌 묵호등대는 검은 바다를 항해하는 선박뿐 아니라 논골마을 사람들의 희망을 상징하는 불빛. 등대에 오르면 묵호항이 항구의 낭만과는 거리가 먼 삶의 무게로 논골마을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 그러나 오징어다리를 씹으며 허기를 달래던 동네 꼬마들은 묵호등대에서 내려다보는 일망무제의 바다를 바라보며 꿈을 키웠다. 최남선의 시 ‘해에게서 소년에게’가 묵호등대에 새겨진 것도 이 때문이리라.
묵호등대는 1968년 신영균과 문희가 출연해 인기를 모았던 영화 ‘미워도 다시 한번’의 촬영무대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등대 아래에 설치한 출렁다리가 드라마 ‘찬란한 유산’에 등장하면서 젊은 연인들의 순례지로 부상했다. 논골마을 사람들은 택시나 버스를 타기 위해 언덕을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언덕을 올라간다. 등대가 있는 언덕에 포장도로가 있고 묵호등대가 버스 종점이기 때문이다.
‘묵호’라는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논골마을을 한눈에 보려면 묵호등대 맞은편 언덕의 덕장으로 가야 한다. 묵호등대 주변에 있던 덕장이 모두 이곳으로 옮겨왔는지 아침햇살에 황금색으로 물든 명태가 차가운 겨울바람에 화석처럼 딱딱한 북어로 거듭나고 있다.
명태덕장에서 보는 묵호등대와 논골마을의 야경이 인상적이다. 빨간색 파란색 초록색 지붕으로 이뤄진 130여 채의 논골마을은 묵호등대가 바다를 향해 빛줄기를 쏘아 보낼 때 짙은 어둠 속으로 침잠한다. 해 뜨기 직전 바다가 여명으로 물들 때는 가로등마저 꺼져 마을은 윤곽조차 희미하다.
그러나 수평선에서 태양이 불쑥 솟으면 논골마을이 어둠 속에서 서서히 형체를 드러낸다. 태양이 등대 높이만큼 고도를 높이면 달동네 사람들의 희망을 상징하듯 좁은 비탈길에도 찬란한 아침햇살이 구석구석 스며든다. 달동네에도 봄이 저만치 가까이 왔다는 뜻이리라.
이제 논골마을에서는 빨랫줄에서 만국기처럼 펄럭이는 오징어를 볼 수 없다. 일손도 부족하고 생산성도 떨어지기 때문이다. 대신 파란만장한 논골마을 사람들의 삶의 궤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벽화골목이 옛 추억을 반추하고 있다.
동해=글·사진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