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티김, 54년 가요인생 은퇴 선언… 그녀가 떠난다 “어쩌다 생각이 나겠지”
입력 2012-02-15 22:07
“지기 직전 온 천지를 신비로운 붉은 빛으로 물들이는 석양의 노을처럼 가장 아름다운 태양의 모습일 때 떠나고 싶습니다.”
대한민국 가요사의 ‘살아 있는 전설’로 꼽히는 패티 김(74)이 15일 은퇴를 선언했다. 서울 태평로1가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가진 패티 김은 오는 6월 2일 서울 잠실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 공연을 시작으로 1년 동안 국내외 도시별로 콘서트(패티 김의 아름다운 이별)를 갖고 데뷔 55주년을 맞는 2013년에 무대를 떠나겠다고 발표했다.
그는 “시작만큼 마무리도 중요하다. 아름답고 화려하게 마무리하고 싶고, 멋지고 당당한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다. 그래서 은퇴를 결심했다”면서 10년 전부터 조심스레 은퇴를 준비해왔다고 밝혔다. “보시다시피 건강하고 성대에도 이상이 없다. 고음이 필요한 ‘사랑은 영원히’를 1974년 발표 당시의 오리지널키로 부르고 있다”고 강조한 그는 요즘도 매일 수영 1500m, 걷기 4∼5㎞를 하면서 건강관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1958년 스무 살 때 미8군 무대에서 활동을 시작한 그는 “다시 태어난다 해도 가수 패티 김이 되고 싶다”며 “그동안 가수로서의 인생에 아쉬움은 있지만 후회는 별로 없다”고 되돌아봤다. 트로트가 지배하던 당시 한국 가요계에 서구적 터치가 들어간 스탠더드 팝이란 새로운 장르를 도입해 꽃피운 패티 김은 뛰어난 가창력으로 정상의 인기를 수십 년 동안 누려 왔다.
그는 가수 활동 중 최고의 순간으로 “개인적으로는 정아와 카밀라를 낳았을 때이며, 가수로는 미국 카네기콘서트홀과 호주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했을 때”를 꼽았다. 89년 가진 카네기콘서트홀 공연은 한국 가수로는 첫 공연이었다.
지금까지 1000여곡을 발표한 그는 ‘9월의 노래’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 ‘사랑은 영원히’ ‘사랑은 생명의 꽃’ ‘가시나무새’를 자신의 명곡으로 꼽았다. 그는 무반주로 즉석에서 가장 애정을 갖고 있다는 ‘9월의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63년 한국 솔로 가수로는 처음으로 미국에 진출한 원조 한류스타인 그는 “요즘 세계 각국에서 한류몰이를 하고 있는 어린 후배 가수들이 너무 노래를 잘해 대견스럽다”고 했다. “실력이 뛰어난 후배 가수들과 듀엣으로 앨범을 내보는 것이 가수 활동 중 꼭 이루고 싶은 소망입니다.”
은퇴 번복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다짐한 패티 김은 은퇴 후 ‘서울의 푸른 하늘 찾기’ 같은 환경보호활동을 펼치고 싶다고 했다. 또 자연인 김혜자(본명)로 돌아가 가족, 특히 손주들과 함께 보내고 싶다고 했다.
가수로 데뷔했던 둘째 딸 카밀라가 3개월 뒤면 출산해 손주가 셋이 된다고 자랑할 때는 영락없는 자상한 할머니였다. 그러나 몸에 딱 붙는 청바지에 붉은색 부띠(발목까지 오는 부츠), 가슴골이 보일 만큼 깊게 파인 흰색 셔츠에 검정 재킷, 중절모를 쓰고 사진기자들에게 다양한 포즈를 취하는 그는 결코 70대로 보이지 않았다. 여성으로는 가장 아름다운 30대, 가수로는 황금목소리를 냈던 50대로 되돌아가고 싶다는 그는 사진기자들에게 “예쁘게 나온 사진을 써 달라”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자리를 같이한 음악평론가 임진모씨는 “패티 김의 가창력은 경이롭다. 절대로 꺾거나, 굴리거나, 휘어서 노래하지 않고 자기 목소리 그대로 낸다”면서 순수한 가창력, 무기교의 가창력이 패티 김의 장수 비결이라고 소개했다.
김혜림 선임기자 ms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