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방우체국-파푸아뉴기니 문성 선교사] (12) 죽음의 공포에 두려워하는 삶

입력 2012-02-15 18:29


주술사가 죄인으로 찍으면 변명할 틈 없이 활을 쏴

구름은 바람을 타고 해발 2500m의 높은 산마을을 찾아와 계곡마다 머물고 있다가 폭우로 내린다. 천둥과 번개가 산 밑에서 또는 바로 옆에서 치면 땅에 주저앉으며 하나님의 위엄 앞에 숨을 죽인다. 밤새도록 마을을 둘러싸고 있던 구름은 아침이 되면 뜨거운 태양의 열기를 이기지 못하고 어디론가 사라진다. 그리고 구비구비 흐르는 강을 감싸고 있던 차가운 구름은 빠르게 높은 산을 타고 올라온다. 눈을 감고 두 팔을 벌려 구름 안개를 가슴 가득히 들여 마시면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경배와 찬양이 나온다. 나뭇잎마다 가득한 수정 같은 이슬을 새와 병아리들이 찾아와 마시는 모습은 노아 이전에 비가 없던 시절 어떻게 하나님이 짐승을 돌보셨는지 절로 놀라움이 일어난다.

부족의 형제들은 하루하루 변하는 자연의 흐름을 따라, 해와 달과 별을 바라보며 살아간다. 자연은 아름답고 창조의 손길과 경이로움으로 가득한데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부족 사람들의 삶은 전혀 평화로움과 미래의 소망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냥 살아 있으니 살아가는 것이다. 순박해 보이기까지 하는 부족 형제들을 바라보며, 인간이 얼마나 타락해 있는지를 알게 된다. 태양이나 달 등 특정한 것을 저들의 신으로 섬기지는 않지만, 모든 것이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어떤 주술사에 의하여 이루어진다고 믿는다.

병이 나면 부족의 의사를 부르는데 그를 다아리나 바나라고 부른다. 나무껍질을 이용 하여 약을 만드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아픈 사람의 머리를 잡고 흔들면서 쥐의 영이 들어가서 아프니 쥐의 영을 쫓아내겠다고 손으로 쥐의 영을 잡는 흉내를 내고 멀리 던져 버린다. 그러나 손 안을 보여 주지는 않는다. 입으로 씹어 뱉어 낸 나무껍질과 짐승의 고기와 잘 섞어 함께 대나무 속에 넣어 익힌 것을 환자에게 먹이고 치술 값으로 약속한 돼지를 받아 간다. 물론 병은 낫지 않지만 그를 모두 의지한다.

무당에게 자기 여자를 훔쳐간 사람을 찾아 달라고 부탁을 하면 대나무 가지를 들고 머리를 흔들며 신 내림을 한 후 신이 내렸다며 대나무 가지를 흔들고 마을로 뛰어 들어가 한 남자를 지목하면 그를 따르던 남자가 단 한번의 변명할 기회도 주지 않고 활을 쏜다. 그렇게 무당은 자신의 권위를 죽음의 공포로 유지한다. 도둑이나 살인자를 찾을 때는 가지고 있던 사람의 뼈를 마당 가운데 나무 위에 세워 놓고 모든 마을 사람들이 나와 만지도록 한다. 한 사람씩 나와 두려워하며 죽은 사람의 뼈를 만지고 들어가는데 도둑이나 살인자는 두려워하며 고백을 하는 경우가 있다. 이렇게 부족 사람들은 언제나 죽음의 공포 속에서 살아간다.

남자의 집은 여자들이 결코 들어 갈수 없는 곳이다. 부족의 남자가 실수로 어린 여자 아이를 데리고 남자의 집에 들어 온 것을 알게 된 마을 남자들은 그날 밤 여러 마을의 남자들이 함께 그 남자의 마을에 있는 모든 사람과 짐승을 모두 죽인 경우도 있었다. 지금은 그 자리에 마을 흔적만이 남아있다. 그래서일까 우리가 사역하는 마을의 이름이 코라(Kora)인데 그 뜻이 ‘피’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많은 부족 사람들이 부족 전쟁으로, 씨족 싸움으로, 질병으로, 많은 부족 사람들이 피 흘린 마을이라 그렇게 부르고 있다.

“오데바나(하얀 사람) 어제 밤에 내가 한 사람을 죽였습니다. 르브세게가 왔다 갔는데 한 명을 칼로 쳐서 죽인 것 같습니다.” 날이 밝자 마자 청년은 두려운 얼굴로 찾아 왔다. 그리고 피가 묻은 긴 칼을 보여 주며 말하였다. 부족에는 아직도 르브세게라는 풍습이 남아 있다. 아무도 모르게 사람을 죽이고자 할 때 몇몇이 모여 한 사람을 정글로 유인하거나, 한 밤에 움막으로 찾아와 독침을 쏘거나 활로 죽인 후, 땅에 묻어 버린다. 만약에 죽은 사람의 가족이 찾을 때 참가했던 사람 중에 누가 사실을 누설하면 다시 다른 사람들이 누설한 사람을 죽여 버리는 무서운 풍습이다. 이렇게 여러 명이 한 사람을 죽여 버리는 것을 ‘르브세게’라고 한다. “선교사님! 마을에 큰 전쟁이 오늘 밤 일어 날 것 같아요!” 흥분된 얼굴로 무알레라는 청년이 찾아왔다. 우리 마을에 태어나면서부터 피부가 하얀 사람이 있는데 세 곳의 다른 마을 여인이 몇 주 사이로 아이를 낳았는데 아이 모두 흰색 피부를 가지고 태어났다. 마을 사람들이 이상히 여겨 아기의 얼굴을 비교하니 모두 코라 마을의 그 남자 아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마을 남자들이 그는 물론 그 가족의 남자들 모두를 죽이기로 결정하고 전쟁 준비를 위해 대마초를 피우고 싸움 준비를 위한 춤을 추며 밤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죽이겠다는 비밀이 상대에게 알려져서 밤사이에 흰색 피부 청년의 가족 모두가 친척이 있는 다른 마을로 도망을 가 생명을 보호할 수 있었다. 이런 일은 언제나 부족에서 일어난다. 사람이 죽는다 하여도 도시의 경찰이 오지 않는다. 경찰이 온다고 하여도 마을 사람 모두가 사실을 은폐하기 때문에 진실을 알아내기가 쉽지 않다. 왜냐하면 사실을 누설하면 다시 보복을 당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죽어 매장 할 때면 무덤 한 쪽에 대나무 통을 묻고 통 끝을 밖으로 내어 놓고 바람이 통하도록 한다. 그 이유는 죽은 사람의 영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죽은 사람의 손에 부인의 옷이나 장신구 혹은 머리카락을 잘라 손에 쥐어 준다. 죽은 영혼이 아내를 데려가지 못하게 하는 예방의 일종이다. 만약에 아내가 병이 나면 무덤 속의 영혼이 숨을 쉬지 못하기 때문이라며 무덤을 뼈가 보일 만큼 파서 공기를 쐐 준다.

초상집에서 늘 볼 수 있는 또 다른 일은 마을 사람들이 죽은 사람의 영혼이 자신들을 알아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얼굴과 온 몸에 흙칠을 한다. 부족 형제들의 삶과 영적인 두려움을 알면 알수록 죽음의 두려움과 공포가 얼마나 큰지를 우리는 가늠하기 어렵다. 새벽으로부터 밤이 되기까지 특정한 사회활동도 공동체 생활도 정글에는 없다. 오직 먹고 생식하는 동물적 근성과 악령에게 속아 서로 훔치고, 속이고, 싸우고 죽이는 삶 외에는 없다. 내일을 향한 계획도 희망도 소망도 없다. 살아 있으니 살아가는 것이다.

오! 살아계신 나의 아버지시여, 나약한 소망 없는 죄인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하시고 부르시고 보내셔서 부족 형제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도구가 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죽음의 공포 속에서 살아가는 형제들이 복음의 말씀을 듣고 자유 함을 누리게 하시고 하나님을 경배하며 찬양하는 참된 예배가 일어나게 하옵소서. 아멘.

● 문성 선교사

문성(60) 선교사는 아내 이민아 선교사와 함께 20년째 파푸아뉴기니 선교를 하고 있다. 지병 박리성대동맥류 때문에 인공동맥을 차고 있다. 선교지 코라 부족은 식인을 할 정도로 원시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