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코너-김명호] 워싱턴의 시진핑

입력 2012-02-14 19:10


시진핑 중국 국가부주석의 미국 방문은 연출자의 의도대로 잘 만들어진 한 편의 다큐멘터리다. 연출자는 시진핑 자신과 그를 떠받치는 공산당 내부 세력, 그리고 미국이다.

시진핑은 미국 방문에서 상당한 대접을 받는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만나고, 카운터파트인 조 바이든 부통령과 미국 겨울 스포츠의 꽃인 프로 농구 경기도 관람한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차려주는 공식 오찬에도 참석하고, 웬만한 국빈들도 잘 가지 못하는 펜타곤에서 미 장성들로부터 브리핑도 듣는다.

25년 전 들렀던 아이오와주의 한 농장을 찾아가고, 그곳 주민들이 원하는 중국의 곡물 수입에 관한 얘기도 주고받을 예정이다. 이 모든 움직임들이 TV를 통해 미국 전역에 방영된다. 이 정도면 워싱턴 정치권에, 미국의 중산층에 중국 미래권력으로서 위상을 각인시킬 만하다.

시진핑이 미래권력이긴 하지만, 모든 것을 틀어쥘 만큼 안정적이지는 않다. 내년에 예정대로 국가주석직에 오르더라도, 후진타오 주석 등으로부터 견제를 받을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미국 방문은 시진핑에게 사실 국내에 어떻게 비치느냐가 더욱 중요하다. 물론 미국과 국제사회에 자신의 존재를 새롭게 부각시키려는 것도 주요 목적 중 하나이다.

시진핑은 워싱턴포스트와의 서면 인터뷰(13일자)에서 “평화 안정이 필요한 시점에 의도적으로 군사 안보 현안을 강조하며 전력을 증강하고 군사동맹을 강화하는 것은 역내 국가 대부분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미국 도착 시점에 맞춰 미국의 아시아 중시 정책을 비판한 것으로, 자신의 위상을 부각시키려는 언급이다. 그러면서 “미국이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의 주요 관심사와 정당한 우려를 전적으로 수용하기를 바란다”고 점잖게 주장했다. 중국내 정서를 의식한 언급으로 사실상 국내용이다.

시진핑은 또 추상적인 표현으로 위안화 개혁을 언급하면서, 민감한 기술의 대중(對中) 수출 규제를 풀어달라고 요청했다. 사실상 미국 방문 중에 할 말을 이미 다 한 것이다. 그는 미국 방문 일정에서 시쳇말로 ‘어깨에 힘만 주면’ 되는 것이다.

미국으로서는 중국의 미래권력이 워싱턴으로 찾아와 ‘인사한다’는 정치적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이번 방문이 지난해 조 바이든 부통령의 방문에 대한 답방 성격이라고 하지만, 그 의미가 동일하지는 않다. 중국의 차세대 지도자가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질서에 어느 정도 ‘감을 익히고 간다’는 메시지를 전 세계에 전달하는 의미도 있다. 미국은 이와 함께 중국으로부터 몇 가지 경제적 이익을 확보할 수 있는 언급을 이끌어 낼 수도 있다.

이번에 미·중이 외교 현안과 관련해 가시적 성과를 거두리라고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양국은 지금 서로 껄끄러운 국면이다. 위안화와 무역 불균형 등 경제관계, 남중국해 영유권, 중국의 해군력 팽창과 미국의 아시아 중시 정책 등 양국이 부딪치는 굵직한 현안은 도처에 깔려 있다. 한반도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도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중은 서로 시진핑의 방미에 의도적으로 정치적 의미를 부여한다. 그 이면에는 현재 국제적 질서를 주도하고 있는 두 슈퍼파워가 앞으로도 그 구도와 힘을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의도가 내포돼 있는 것이다. 곳곳에서 이해가 상충하지만 어느 한쪽이 압도적인 우위를 보일 수 없기 때문에, 현실을 인정하고 지구촌 패권을 적절히 양분하는 최대공약수를 찾는 것이다.

워싱턴의 시진핑, 그 모습은 이런 의미가 있다. 그보다는 양국이 그런 정치적 의미가 있도록 의도적으로 만들어가고 있다는 표현이 더 맞을 수도 있겠다.

워싱턴=김명호 특파원 m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