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형의 교회이야기:주희현 목사 이야기

입력 2012-02-14 10:17


서울시 영등포구 문래동 5*4. 그녀에게 정말 잊어버리고 싶은 주소였다. 가난했고, 음침했으며 희망 없음을 상징하는 주소였다. ‘영등포’는 ‘영원히 등지고 싶은 포구’와도 같았다.

주희현 목사. 캐나다 토론토에서 사역하고 있는 40대 여성 목회자다. 한국에서는 서울 서초동 모 교회에서 부교역자로 오래 사역했다. 그녀를 안 지도 꽤 됐다. ‘강남에 꼭 맞는 모습이군….’ 처음 만났을 때 느낀 소감이었다. 키는 컸고, 세련됐으며 매너도 좋았다. 뜨거운 열정의 소유자였다. 주 목사가 졸업한 신학교 출신 목회자들로부터 ‘대단한 여 목회자’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렇게 ‘강남에 어울리는 목사’로 그녀를 생각했다. 목사인 남편과 함께 캐나다에 건너 간 이후에도 차세대들을 위한 사역을 왕성히 펼쳤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주 목사와 인사동 한 카페에서 긴 시간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영등포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간직했던 그녀의 이미지와는 너무나 다른 환경의 스토리였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주 목사가 10살 때 헤어졌다. 술주정뱅이 아버지는 문래동에서 소규모 박스 공장을 운영했다. 주 목사는 그 곳에서 자라났다. 매일 영등포 거리 유흥가 ‘언니’ 들을 보아야 했다. 소망이란 단어, 너무나 낯설었다. 길 건너 여의도가 가까웠지만 가질 수 없는 것, 닿을 수 없는 것 들은 너무나 확연히 존재했다. ‘환상’과 ‘현실’은 동시에 존재했다.

거리 저 편 교회에도 가 보았다. 교회는 잘 사는 크리스천들이 다니는 환상의 장소였다. 어렸지만 생각했다. ‘정말 교회가 필요한 곳은 우리 동네가 아닌가. 우리야말로 예수님이 필요하다고….’

주님을 만나 신학을 전공하고 목사가 되었어도 영등포만은 절대 가기 싫었다. 가끔씩 그녀는 예수님께 하소연했다. “주님, 입장 한 번 바꿔 생각해 보세요.” 그런데 어느 날, 그녀에게 영적 깨달음이 왔다. 생각해보니 예수님은 이미 입장을 바꿔 이 땅에 내려오셨다. 그 예수님이 자신을 안다는 사실에 감격했다. 자유함을 느꼈다. 귀한 남편을 만났고, 아름다운 가정을 꾸렸다. 사역은 어디서나 성공적이었다. 그녀가 가는 곳 마다 살리는 역사가 일어난다.

얼마 전 그녀는 주로 노숙자들이 다니는 영등포 광야교회에 집회를 인도하러 갔다. 예배당 안의 그들은 도무지 설교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노래 한곡 하겠다고 나오는 성도도 있었다. 강단위에서 주 목사는 스카프를 풀어 제쳤다. 그리고 먼저 구성지게 한 곡조 뽑았다. “저도 영등포 출신입니다. 문래동 5*4 번지. 소망이 없었지요. 그런데 예수님이 입장 바꿔 제게 다가오시더라고요. 여러분에게도 가실 겁니다. 그게 소망이에요.” 노숙자 성도들이 자세를 곧추세웠다.

“광야교회 임명희 목사님이 말했어요. ‘영등포는 영혼의 등불을 밝히는 포구’라고. 이제 그 말을 이해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니 영등포와 화해할 수 있게 되더군요.”

이태형 선임기자 t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