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김의구] ‘새누리’와 ‘민주통합’
입력 2012-02-13 21:38
새누리당이 13일 전국위원회를 열고 새 당명과 로고를 확정했다. 민주통합당은 지난달 15일 전당대회에서 당 이름을 확정한 마당이다.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신당이 생겼다가 선거가 끝나면 사라지고, 기존 정당도 이름을 이리저리 바꾸는 일이 다반사가 된 게 우리 정치다. 하지만 복잡다단한 정당이름의 역사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주요 정당의 작명법에 일정한 흐름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새누리당의 주축을 이루는 보수 세력들의 이름짓기에서는 위기감, 변화와 혁신으로 내몰리는 강박증 등이 드러난다. 민주공화당, 민주정의당, 민주자유당처럼 보수적 가치를 대놓고 천명하는 이름은 1995년 12월 신한국당 이후 사라졌다. 한나라당에서 새누리당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자유주의나 민주주의, 시장경제 등 보수의 핵심가치는 되도록 언급하지 않는 게 표를 모으는 데 유리하다는 인식이 자리 잡았다. 그저 새로운 당임을 강조하기 위해 ‘신’ ‘새’와 같은 수식어를 쓰거나 순한글식 조어로 구닥다리 이미지를 조금이나마 벗어보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보수가치 배제한 여당 작명
새로운 천지를 의미하는 새누리는 ‘신한국’보다 확장된 글로벌 시각을 담은 이름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새누리만 봐서는 어떤 세상을 지향하는 지가 불분명하다. 이는 15년간 통용됐던 한나라란 이름도 마찬가지다. 애국주의 냄새가 나긴 하지만 보수인지 진보인지 이념적 지향점을 도통 가늠할 수 없다.
민주통합당 쪽의 작명법은 이와 완전히 다르다. 선거 때마다 거의 예외 없이 당명을 바꿨지만 ‘민주’라는 명칭을 고수한다. 그리고 ‘통합’이나 ‘통일’ ‘연합’이란 표현을 많이 쓴다. 1987년 5월 김대중 김영삼 전 대통령이 신한민주당을 제치고 새로운 야당을 만들었을 때 통일민주당이란 명칭을 썼다. 양김이 알력을 정리하고 민주화 쟁취에 집중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었다. 하지만 13대 대선을 앞두고 양김은 다시 분열됐고 민정당 노태우 후보에 고배를 마셨다.
1990년 3당 합당 이후 동교동계를 중심으로 한 민주화 세력은 신민주연합, 통합민주당으로 당명을 바꾸며 분열과 결합을 반복했다. 2007년 8월 대선을 앞두고 여당인 열린우리당 지지율이 바닥을 헤매자 호남기반의 민주당과 열린우리당 합당파 등이 창당한 당은 ‘통합’에 ‘대’자까지 붙은 대통합민주신당이었고, 이듬해 통합민주당이 출범했다. 그러나 국민회의가 집권당이 된 후 개명한 당명은 새천년민주당이었고, 노무현 후보가 당선된 이듬해인 2003년 정권주도세력이 창당한 여당의 이름은 열린우리당이었다. 힘이 있을 때는 굳이 통합이나 통일이란 단어를 당명으로 쓰지 않았던 셈이다.
통합 강조한 제1야당 이름
보수 세력의 작명에서는 국민들의 따가운 비판 앞에 직면한 콤플렉스가 드러난다. 자신들을 부패 세력이나 기득권 집단으로 등식화하는 유권자 앞에 쪼그라든 모습도 엿보인다. 그러나 새누리당이 국민 신뢰를 얻느냐는 작명의 문제가 아니다. 국민들이 원하는 정치를 펼쳐야 한다. 보수로서 이행해야 할 도덕적 의무를 묵묵히 수행하고, 보수의 가치를 지키고 설득해 내야 한다. 소신을 포기할 것이 아니라 소통을 통해 끊임없이 단련하고 확대 재생산 해내야 한다.
야당이 통합이나 통일 등의 명칭을 쓰는 것은 잦은 이합집산을 감추려는 심리의 발로로 해석된다. 정치세력들 간의 역동적인 합종연횡은 필요하며 야당의 장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국민들이 안정감을 느끼지 못할 정도가 되면 약점이다. 필요 이상의 분열을 자제하는 포용의 리더십이 더 필요할 수도 있다.
김의구 논설위원 e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