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정인교] 소값 파동의 교훈
입력 2012-02-12 18:12
2008년 이후 세계 곡물가격이 급격히 상승하는 애그플레이션(agflation)이 진행됐고, 2010년 7월 이후 국지적 기상재해로 러시아 등 곡물수출국의 수출금지조치, 국제투기자본의 국제 곡물시장 유입 등으로 곡물가격 상승과 변동성이 커졌다.
곡물가격 인상으로 국내 라면, 빵 등 식품가격이 오르지 않을 수 없었고, 수입산 옥수수와 대두를 주로 사용하는 국내 사료업계도 가격을 인상했다. 최근 몇 개월 사이 소값이 반토막 난 상황에서 소 사육비의 30∼40%를 차지하는 사료 값이 폭등하자, 소를 굶길 수밖에 없는 축산농가가 나올 정도로 국내 축산업계는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소값 하락의 원인은 적정 두수 이상의 사육마릿수에 있다. 과거 두 차례 소값 폭락이 있었던 1983년과 96년 당시 소 사육두수가 300만두를 넘었고, 최근 한우는 320만두에 육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쇠고기 수입이 허용된 이후 국내 쇠고기 자급률은 45% 내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며, 270만두 수준의 한우가 유지되면 소값은 안정세를 유지하게 된다는 것이 학계의 분석이다.
적정 수준을 초과하는 50만두의 한우가 가격폭락의 1차 원인이 됐고, 설상가상으로 사료 값 인상이 축산농가의 경영난을 초래하면서 한우 출하가 늘어나자 가격폭락이 심화될 수밖에 없었다. 우루과이라운드(UR) 농업개방 직후부터 우리 농정당국은 엄청난 예산을 투입해 한우 구조조정을 실시해 2002년 140만 마리 수준으로 줄였다.
하지만 사육두수가 바닥을 찍으면서 한우 입식이 되레 늘어나 송아지 가격도 오르기 시작했고, 2003년 광우병 발생으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전면 중단되면서 안전한 쇠고기 수요가 늘었다. 이 시기에 웰빙 트렌드가 국내 생활문화로 자리잡으면서 한우 수요는 더욱더 늘어나게 되었고, 한우 마릿수는 꾸준히 증가추세를 보였다.
2008년 쇠고기 이력제 및 원산지표시제 정착으로 소비자가 프리미엄 한우를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게 됨에 따라 한우 고기 값이 2010년 말까지 지속적으로 상승했고, 2011년 한우 사육두수는 300만 마리를 넘어섰다. 이에 농업학자들은 한우파동을 우려하며 대책 마련을 제기했으나 귀담아듣는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번 사태를 보면서 몇 가지 시사점을 찾게 된다. 먼저 구조조정 못지않게 사후관리가 중요하다. UR 타결이라는 대외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가 나서서 구조조정을 했지만, 사후관리를 소홀히 한 농정당국은 이번 사태를 뼈저린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둘째, 수급에서 벗어나 장기호황을 누릴 수 없다는 점이다. 학계에서 270만두의 한우를 적정규모로 예견했지만, 한우 쇠고기 값이 오른다고 소 사육을 늘려 오늘날 사태를 야기한 점은 축산농가의 책임이다. 농가의 인식이 바뀌지 않으면 또 다른 파동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셋째, 한우산업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품질관리, 브랜드화, 소비기반 확충 등의 노력이 지속돼야 한다. 유통경로를 합리화해 소비자가격과 축산농가가격 간 격차를 줄여야 하고, 육질 고급화로 쇠고기산업의 부가가치를 높여야 한다. 등급별 한우 경락가격 분석결과에 따르면 고품질 한우일수록 경락가격 하락폭이 작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우농가들은 30여만 마리의 소를 정부가 수매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으나, 농정당국은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는 한우 수매가 또 다른 소값 파동을 가져올 수 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대신 쇠고기 소비 확대, 암소 도태 유도, 송아지 생산억제 등 대책을 제시하고 있다. 과거 정책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한우 마릿수를 적정 수준으로 조정한 이후 사후관리를 강화해야 한다는 점을 깊이 새겨야 한다.
정인교(인하대 교수 경제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