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의구] 유경호텔
입력 2012-02-12 18:12
평양 보통강구역에는 25년째 공사 중인 마천루가 있다. 330m 높이, 105층짜리 유경호텔이다. 버드나무가 많은 평양의 옛 별명 유경(柳京)을 딴 이 호텔은 1987년 프랑스와 합작으로 건설에 들어갔으나 동구권 연쇄 붕괴 등으로 북한이 자금난에 빠지면서 공사가 중단됐다. 원래 1989년 평양에서 열린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에 맞춰 완공할 계획이었다가 92년 80번째 김일성 생일로 일정이 연기됐지만 이마저도 외부 골조 공사만 마무리한 채 공정이 중단됐다.
평양 시내에서 유난히 두드러진 큰 몸집 때문에 서방 언론들은 ‘지상 최대의 실패작’이란 별명을 붙여 북한 경제 실패의 상징으로 유경호텔을 소개하곤 했다. 올 초에도 CNN에서 운영하는 여행 사이트 CNNGO는 유경호텔을 세계에서 가장 추한 건물 1위로 선정했다.
유경호텔은 남북 체제 경쟁의 산물이었다. 1986년 쌍용건설이 싱가포르에 완공한 웨스틴스탬포드 호텔이 226.1m의 세계 최고층 호텔 건물로 기네스북에 오른 게 북한을 자극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63빌딩(264m) 등 고층건물이 서울 곳곳에 들어서자 북한은 세계 최고층 호텔이자 아시아 최고층 빌딩을 세우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의욕만 앞선 계획이 표류하면서 유경호텔은 계속하기도, 없던 일로 되돌리기도 어려운 ‘애물단지’가 됐다. 북한은 89년 세계청년학생축전 참가자들에게 자발적이라는 명분을 붙여 노력동원을 실시했다. 2005년엔 2014년 아시안 게임을 유치한 인천시에 북한 선수단 참가 대가로 호텔 건립비용을 대줄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북한에 휴대전화 사업을 독점적으로 벌이고 있는 이집트 기업 오라스콤이 2008년 우여곡절 끝에 공사를 재개해 오는 4월 100회 김일성 생일에 호텔을 완공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러나 착공 이후 너무 오랜 세월이 흘러 높이나 층수 순위가 세계 30위권 밖으로 밀려나게 된다. 아시아에서만 해도 508m짜리 타이페이101 빌딩과 828m 높이 부르즈 칼리파 등이 잇따라 들어섰기 때문이다.
북한은 지난해 평양 소재 대학들을 휴교시키고 유경호텔 주변 정리 작업 등에 학생들을 동원했다. 2012년을 강성대국 원년으로 선전하기 위한 주요 사업으로 유경호텔 완공이 포함된 때문으로 보인다. 평양에도 랜드마크 빌딩이 들어선다니 반가운 소식이지만 20년 가까이 방치됐던 건물 건설을 마구 밀어붙여도 되는지, 안전성 문제는 없는 것인지 우려스럽다.
김의구 논설위원 e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