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속 과학읽기] (6) 稅吏로 일한 화학자의 운명은…

입력 2012-02-12 18:12


1788년 혁명 전야의 파리, 천재 화학자 라부아지에 부부와 당대 최고의 화가 다비드가 만났다. 처녀시절에 다비드에게 그림을 배운 부인은 결혼 후 남편의 조수이자 그림으로 기록을 남기는 동반자로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

‘근대화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라부아지에는 25세에 과학원 회원으로 선출될 정도로 놀라운 업적을 자랑한다. 연금술이나 4원소설과 같은 무질서한 화학논리를 타파하고 정확한 정량적 실험을 통해 ‘질량보존의 법칙’을 발표했고, 산소를 발견하여 새로운 방식으로 연소현상을 설명했으며, 새로운 물질이론의 체계를 세웠다.

다비드는 이 초상화에 부부의 지성미와 사랑뿐 아니라 오른쪽 바닥의 유리 공이나 테이블 위의 유리기구나 수은 병과 같이 실험실 도구들을 극히 사실적으로 그려 넣음으로써 위대한 화학자의 업적을 함께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이 그림이 마르기도 전, 두 사람은 전혀 다른 길을 가게 된다. 과학자는 과거에 세리로 일했다는 죄목으로 51세의 나이에 단두대에 올랐고, 다비드는 열렬한 혁명 지지자가 된다.

당시 과학자들은 “머리를 베는 것은 한 순간이지만, 두뇌를 길러내는 데는 100년도 더 걸릴 것”이라며 탄원했지만 혁명재판소는 “공화국은 과학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그러나 정치혁명의 파도가 지나간 뒤 그는 명예를 회복하여 최고의 과학자로 평가받았고, 이 작품 역시 미술사에 걸작으로 남게 됐다.

김정화(KAIST 문화기술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