在佛 1세대 거장들 ‘한국의 미’를 입히다… ‘1958-에콜 드 파리’展
입력 2012-02-12 17:42
19세기 이후 세계미술의 중심지로 부상한 프랑스 파리는 작가라면 한 번쯤 이곳에 머물면서 작업을 하고 싶은 동경의 대상이었다. 한국 작가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 후반 이종우 배운성 나혜석 등이 이곳을 근거지로 활동했으며, 광복과 6·25전쟁을 거친 뒤 남관 손동진 김흥수 김환기 이성자 권옥연 이세득 이응로 한묵 등이 잇따라 파리 행을 선택했다.
제1차 세계대전 후 유럽의 문화적 수도였던 파리에 몰려든 작가들은 ‘에콜 드 파리(Ecole de Paris)’라고 일컬어진다. 분단과 전쟁을 겪은 한국 작가들은 현대미술의 용광로에서 더 많은 것을 경험하고 세계미술의 현장에서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견주어보고 싶었을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 펼친 이들의 작품세계는 한국 현대미술의 정착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 가운데 권옥연(1923∼2011) 김환기(1913∼1974) 남관(1911∼1990) 손동진(1922∼) 이세득(1921∼2001) 이성자(1918∼2009) 등 대가들의 작품을 통해 당시 미술의 경향과 이슈 등을 조명하는 ‘1958-에콜 드 파리’ 전이 서울 충무로 신세계백화점 본점 신세계갤러리에서 3월 19일까지 열린다. 1958년 파리에서 함께 활동한 1세대 재불 작가들의 작품 30여점을 만날 수 있다.
권옥연(재불기간 1956∼60)은 유럽의 추상미술을 접한 후 평면적인 이미지의 풍경 및 인물화에서 추상적인 실험 작업으로 전환하게 된다. 그의 60년 작품 ‘추상’은 두툼한 질감, 절제된 색채, 형태가 없는 그림으로 추상화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김환기(재불기간 1956∼59)는 파리에서 본 거장들의 작품에는 모두 노래가 있다고, 지금까지 자신이 부르던 노래가 무엇인지를 파리에 와서 구체적으로 알게 된 것 같다고 고백했다. 한국적인 소재를 바탕으로 한 50년대 작품 ‘항아리’ ‘산월’ ‘새’ 등은 문학적인 리듬과 운율을 느끼게 한다.
남관(재불기간 1954∼68)은 외국생활의 고뇌와 외로움을 ‘파리야경’ ‘시장’ 등 신비스런 그림으로 표현했다. 그는 50년대 말 파리 몽파르나스에서 남쪽의 라 플라스로 아틀리에를 옮기게 되는데 여기서 이세득(재불기간 1958∼1962)과 작업실을 같이 사용했다. 이세득의 58년 작품 ‘하오의 테라스’는 밝은 색채구성으로 프랑스 작가 마티스의 작품을 연상시킨다.
손동진(재불기간 1956∼59, 1976∼93)은 한 번 가기도 어려운 파리 행을 두 번이나 결행했다. 서구의 근대미술을 보고 싶어서 간 파리이지만 오히려 우리 전통에 대한 관심과 고전에 대한 재발견을 하게 된다. 전통문화를 현대적으로 해석해 동시대 국제미술 흐름에 동참하고자 했다.
이번 전시 작가 중 유일한 여류 작가인 이성자(재불기간 1951∼2009)는 파리 화단에서 역량을 발휘하며 당당하게 경쟁했다. 한국의 전통적 미감을 서양화로 표현한 그는 91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예술·문학 최고 훈장’을 받기도 했다.
특정 유파나 경향에 국한되지 않고 각자 독특한 방법으로 창작에 몰두한 이들의 작품을 관통하는 것은 ‘한국적 미의식’이 아닐까 싶다(02-310-1924).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