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재의 ‘영성의 발자취’] (6)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

입력 2012-02-12 17:47


예수님과 함께 죽고 함께 산, 참 제자의 길을 보다

무덤은 영성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언뜻 보면 아무 관계가 없다. 우선 무덤은 죽은 자가 묻혀 있는 곳이요, 영성은 사는 길이다. 어떻게 사는 것과 죽는 것이 관계가 있는가?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기독교 3대 순례지가 모두 무덤이라는 것이다. 로마 순례는 로마에 있는 성 베드로 무덤을 보는 것이요, 예루살렘 순례는 예루살렘에 있는 예수님 무덤을 찾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가톨릭 교인들이 많이 가는 산티아고 순례는 스페인 산티아고 콤포스텔라 대성당에 있는 성 야고보 무덤을 찾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예루살렘에는 무덤이 많다. 우선 감람산에 오르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유대인들의 무덤을 볼 수 있다. 아마 메시아가 오시면 가장 먼저 맞이하고 싶은 마음에 그곳에 묻혔을 것이다.

길을 따라 내려오면 여기저기 감람산 동굴에 유골을 모아둔 유골함들이 있다. 유골함은 석회암으로 깎아 기하학적인 꽃무늬를 새기고 그 위에 이름을 썼다. 요셉, 마르다 등 우리가 알 만한 이름도 있다.

감람산에서 내려와 기드론 골짜기로 가면 피라미드형의 무덤을 볼 수 있다. 압살롬의 무덤과 아디아베네의 여왕 헬레나의 무덤이다. 시대상으로 예수님보다 앞섰기 때문에 아마 예수님도 보셨을지 모른다. 그리고 시온산으로 가면 다윗왕의 무덤이 있는데 다윗왕의 실제 무덤이라기보다는 후대의 사람들이 그를 기념하여 만든 상징적인 무덤일 것이다.

전형적인 유대인 무덤은 삼중 구조

그 외에 정원 무덤, 산헤드린 무덤 등 많은 무덤들이 예루살렘에 있다. 그 중에서도 필자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 것이 있다.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이다. 예루살렘 성묘교회 구석에 위치한 이 무덤은 전통적으로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 무덤의 형태와 모양에 있어서 제2성전시대(예수님)로 평가되는 이 무덤은 성묘교회에서 유일하게 에티오피아 교회가 관할하고 있다.

과연 이게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일까? 성경은 아리마대 요셉을 존경받는 산헤드린 공회원으로 소개한다. 그는 율법에 철저한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던 사람이었다. 또한 그는 부자로서(마 27:57) 선하고 의로운 사람이었다(눅 23:50). 그는 공회에서 사람들이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의할 때 찬성하지 않았고(눅 23:51) 사람들 뒤에 숨어서 조용히 예수님을 따랐다(요 19:38).

그러나 숨어 있는 것은 언젠가 드러나기 마련이다. 예수님이 붙잡혀 십자가형을 받고 그를 따르던 무리들이 뿔뿔이 흩어질 때 한 사람이 빌라도 공관에 나타났다. 아리마대 요셉이었다. 성경은 이 부분을 이렇게 묘사한다. “저물었을 때에 아리마대 부자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왔으니 그도 예수의 제자라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에 빌라도가 내어주라 분부하거늘 요셉이 시체를 가져다가 정한 세마포로 싸서 바위 속에 판 자기 새 무덤에 넣어 두고 큰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고 가니”(마 27:57∼60).

작년 여름 어느 날 성묘교회로 발걸음을 옮겼다. 성묘교회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특히 예수님 무덤 앞에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지어 있었다. 그런데 바로 옆에 사람들의 발걸음이 뜸한 곳이 있었다.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이었다. 무덤 안으로 들어갔다. 무덤 입구를 막은 돌(고랄)은 없었다. 컴컴한 내부는 작은 불빛으로 겨우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침침했다. 세월의 깊이가 무덤 속에 배어 눅눅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은 전형적인 유대인 무덤이었다. 전형적인 유대인의 무덤은 삼중적인 구조로 되어 있다. 무덤을 이루는 외부 면과 그 안의 현관, 그리고 가장 깊은 곳에 위치한 납골실이다. 무덤을 이루는 외부의 돌은 사람의 눈에 드러나 보이는 곳에 있다. 돌(고랄)은 무덤 밖과 무덤 안을 이어주는 경계선이다. 무덤 문을 열고 들어가면 현관이 나온다. 현관은 사람이 죽으면 거기에 시신을 놓고 해체를 기다리는 곳이다. 팔레스타인의 더운 날씨에 1년쯤 지나면 시신이 해체되어 뼈만 남는다. 그것을 납골관에 모아 안장한다. ‘고킴’이라고 부르는 납골실은 무덤 안에 있는 또 다른 무덤이다. 돌을 깎아 뼈를 담은 납골관이 들어갈 정도로 여러 개를 파놓는다. 그 무덤 속에 가족들이 매장된다.

타임머신 타고 2000년 전으로 간 느낌

성경은 아리마대 요셉이 자기가 죽으면 들어가려고 판 새 무덤에 예수님을 매장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곳은 아리마대 요셉의 소유지였을 것이다. 오늘날 예수님의 무덤은 옛날 형태 그대로라고 볼 수 없다. 아마도 수많은 세월, 이곳을 순례한 사람들에 의해 그 바위가 조각나고 그것을 성물로 생각한 사람들에 의해 자기 나라로 옮겨갔을 것이다. 그래서 성묘교회에 실제로 남은 무덤은 요셉의 무덤밖에는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예수님 무덤만 생각하고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에는 관심을 갖지 않았기 때문에 이 무덤이 오늘날까지 잘 보존될 수 있었다.

아직도 습한 냄새가 사라지지 않는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곳이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인가? 타임머신을 타고 2000년을 거슬러 올라갔다. 아리마대 요셉이 자기가 판 새 무덤에 예수님을 모신 것은 여러모로 위험한 일이었다. 특히 그가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었던 만큼 그 일은 더욱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그때 죽으면 죽으리라 결심했는지 모른다. 아마도 그는 자기 부정이 예수님을 따르는 길이라는 것을 알았는지 모른다. 그는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 16:24)는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하리라 생각했는지 모른다.

그의 헌신통해 하나님이 인류 구원

그렇게 함으로써 아리마대 요셉이 이룬 일이 있다. 그의 개인적인 헌신을 통해 하나님이 인류의 구원을 이루신 것이다. 아리마대 요셉이 위험을 무릅쓰고 자기 무덤에 예수님을 장사했기 때문에 예수님이 그 무덤에서 사흘 만에 부활하지 않았는가? 그뿐 아니다. 그는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우리 대신 죽으신 예수님의 죽음에 대해 살아 있는 역사적 증인이 되었다.

그는 자신이 죽은 후에 들어가려고 준비한 무덤에 예수님을 모심으로써 우리 대신에 죽으신 주님의 죽음을 역사적으로 고백한 첫 번째 사람이 되었다. 나아가 그는 우리가 예수님의 죽음을 추상적으로 생각하는 것에 비하여 예수님의 죽음을 구체적으로 체험한 사람이 되기도 했다. 예수 믿는다는 것,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멀찍이 십자가를 바라본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날마다 십자가에 자기 자신을 못 박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다만 예수님을 본받는 것이 아니라 그 예수님의 죽음이 내 죽음이 되고 예수님의 부활이 내 부활이 된다는 것이다.

본회퍼의 말대로 제자란 자기 주인의 고난과 버림받음과 십자가의 죽음에 참여하는 자다. 아리마대 요셉은 온몸으로 이것을 고백했으니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다. 그는 살아 있을 때는 자기를 대신하여 죽으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나는 예수님과 함께 죽었다”를 고백하고 그가 죽은 후에는 예수님의 무덤 옆에 나란히 묻혀 “나는 예수님 때문에 다시 살았다”를 고백했으니 그는 참 제자요, 위대한 그리스도인이다. 아! 예수님과 함께 죽고 예수님과 함께 산(롬 6:8) 아리마대 요셉이 그립다.

<한신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