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능력 생긴 후 펼쳐지는 전혀 다른 세상… 김연수 장편소설 ‘원더보이’

입력 2012-02-10 18:26


“나를 원더보이로 만든 사람은 권 대령이었다. 다들 보는 앞에서 ‘대령님’이라고 했지만 돌아서면 ‘두더지’라는 별명으로 부르던, 보통의 군인과 달리 장발에 늘 사복차림으로 밤에도 선글라스를 끼고 다니던 사십대 중반의 풍채 좋은 아저씨.”(10쪽)

김연수(42·사진)의 장편 소설 ‘원더보이’는 1인칭 화자 정훈이 교통사고로 입원한 병원에서 깨어난 순간에서 시작한다. 1984년, 열다섯 살 소년 정훈은 과일행상을 하는 아버지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한다. 그해 가을 이스라엘의 초능력자 유리 겔러가 한국을 방문, 많은 방청객이 지켜보는 가운데 숟가락을 구부리고 고장 난 시계를 고치는 쇼를 했다. 그 염력이 정훈에게도 옮겨온 것일까.

일주일 만에 깨어난 정훈에겐 사람들의 속마음을 읽는 능력이 생긴다. 이제 정훈의 이름은 ‘원더보이’. 전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권 대령이 초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원더보이를 데려간 곳은 재능개발연구소였다. “그냥 느낌으로 맞혀보란 말이야. 정신을 집중해서. 어차피 이건 연구니까 정답 같은 건 없다. 그냥 군(君)이 느끼는 대로, 아니면 X레이처럼 그 속이 보이면 보이는 대로 말하면 되는 것이다.”(83쪽)

다음 단계로 권 대령이 정훈을 데려간 곳은 취조실. 그곳으로 매일매일 출근해 취조당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읽고 수사 자료를 제공하던 정훈은 권 대령에게서 도망쳐 나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세상에서 제일 ‘FB(Fire Bottle·화염병)’를 잘 던진다는 선재 형, 자신 때문에 첫사랑이 죽었다는 죄책감으로 인해 남장을 하고 다니는 강토 형(본명 희선), 자조(自助)농장을 꾸려가고 있는 무공 아저씨, 해직 기자 출신으로 작은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는 재진 아저씨…. 저마다 극복하기 어려운 상처를 가지고 있는 인물들과 사귀면서 원더보이는 조금씩 어른이 되어 간다. 하지만 아무리 초능력자라 해도 풀 수 없는 한 가지 질문은 자신을 분만하자마자 세상을 뜬 어머니의 존재다.

“그 무엇보다도 내게는 인류의 머리를 총동원해도 풀 수 없는 가장 큰 문제, 그러니까 엄마는 누구냐는 질문이 남아 있지 않은가. 도대체 나는 왜 이 세상에 태어났는가? 그건 답이 아니라 질문이란 말이다. 제기랄.”(242쪽)

우연히 아버지가 남긴 수첩에서 처녀 시절의 어머니가 경기도 연천군에서 독일제 필드스코프(탐조용망원경)를 소지한 채 북방쇠찌르레기의 다리에 가락지를 부착하던 조류 연구자라는 사실을 알아낸다. 재진 아저씨의 도움을 받아 당시 철새 다리에 부착한 가락지 인식번호를 알아낸 원더보이는 국제조류학회에 편지를 띄운다. 가락지를 부착한 사람의 이름도 등록하게 돼 있기 때문에 만약 등록된 사람의 이름이 어머니와 같다면 두 사람은 동일 인물이 되는 것이다.

소설은 이에 대한 결말은 내놓지 않지만 원더보이에게 일어난 기적과 기적의 가능성에 관해 들려준다. “그 일기를 통해 나는 나의 엄마가 당신들의 ‘여러 나라를 날아다니는 새들의 삶’에 가락지를 등록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번호는 HONGKONG C7655입니다. 가능한 한 빨리 이 번호를 등록한 사람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254쪽)

정철훈 문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