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끼리 성폭행… 여성이 남성 장애인 목욕… 장애인 시설, 인권은 ‘사치’였다
입력 2012-02-09 21:44
영화 ‘도가니’를 통해 사회적 이슈로 부각된 장애인 생활시설 내 인권침해가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시설 종사자에 의한 장애인 폭행·학대는 물론 장애인 간 성폭행이나 성추행 등도 빈번하게 발생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10월 29일부터 12월 22일까지 200개 장애인생활시설의 장애인 5802명에 대한 인권침해 실태를 조사한 결과 39개 시설에서 인권침해 사례 59건이 적발됐다고 9일 밝혔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와 지방자치단체가 공동으로 구성한 민관합동조사팀에는 상담전문가, 민간 인권활동가를 포함한 870명이 참여했다.
울산에 있는 한 청각장애인시설에서는 남학생 상급생이 동성 하급생을 2년간 상습적으로 성폭행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전문가 심층면접 등을 통해 13∼18세 남성 장애인 32명 중 10명이 피해자, 9명이 가해자로 밝혀졌다. 새로운 하급생이 들어오면 상급생이 시설 내 생활관 화장실로 데리고 가 성폭행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
복지부는 연루된 학생을 다른 시설로 옮기거나 귀가 조치했다. 또 인권침해 등 위법행위의 책임을 물어 시설 원장을 교체했고, 사무국장과 교사 등을 해임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피해자 10명 중 6명은 본인이 성폭행을 당한 뒤 다른 학생을 성폭행한 것으로 조사됐다”면서 “청각장애인들이 성폭행을 당해도 소리를 지를 수 없어 이런 사례가 방치됐다”고 말했다.
조사결과 이곳 이외에 다른 시설들에서도 성추행 5건, 폭행 의심사례 6건, 학대 의심사례 5건, 체벌 의심사례 12건 등이 적발됐다. 남성 장애인에게 여성 종사자나 봉사자가 목욕, 옷 갈아입히기 등을 수행하도록 하는 등의 수치심 유발 사례도 6건이 지적됐다.
위생도 전반적으로 불량했다. 장독대 안에 죽어 있는 파리 떼와 구더기가 있는 김칫독을 방치하거나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재료가 발견됐다. 방바닥과 벽, 천장이 곰팡이로 덮인 곳이 있었고 종사자가 장애인을 감금한 사례도 있었다.
복지부는 학대 5건 중 담배를 피웠다는 이유로 밥을 주지 않고 결박한 시설은 시설폐쇄 조치했다. 나머지는 원장 경고 및 인권교육을 실시키로 했다. 노동력 착취 등 9건은 경찰에 수사의뢰 했다.
복지부는 장애인 인권증진 대책도 내놓았다. 장애인시설 내에 ‘인권지킴이단’을 의무적으로 운영토록 했다. 성폭력 범죄자의 장애인복지시설 취업을 금지하고 10년 동안 시설을 운영할 수 없도록 관계 법령도 개정할 계획이다.
임항 기자 hngl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