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태 국회의장 사퇴] 고명진 진술번복… “김효재 수석 ‘고승덕과 일면식 없다’ 거짓 해명에 실망”
입력 2012-02-09 21:40
박희태 국회의장의 전 비서 고명진(40·사진)씨의 진술 번복으로 새누리당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의 실체가 전모를 드러내고 있다. 박 후보 캠프 관계자들의 견고한 ‘침묵의 카르텔’이 무너지면서 박 의장과 김효재 청와대 정무수석에 대한 소환조사도 가시권에 들었다.
◇고백으로 드러난 사건 전모=지금까지 검찰 조사를 토대로 사건을 재구성하면 이렇다. 사건을 처음 폭로한 고승덕 의원은 돈 봉투에 첨부된 명함을 근거로 박희태 후보 캠프를 전달자로 지목했다.
고 의원은 돈 봉투를 건넨 인물의 인상착의를 ‘뿔테안경을 쓴 30대 남자’로 진술했다. 이와 관련, 김 수석의 전 보좌관 김모씨가 의원실을 돌며 돈 봉투를 돌렸다는 증언이 9일 정치권에서 나왔다.
고 의원은 전대 다음날 보좌관을 통해 돈 봉투를 박 의장실의 고씨에게 돌려줬다. 고씨는 당일 오후 캠프 상황실장이던 김효재 청와대 정무수석에게 이 사실을 보고했고 돈 봉투는 재정을 총괄했던 조정만 국회의장 정책수석비서관에 맡겼다. 그러자 김 수석은 “그것을 돌려받으면 어떡하느냐”고 화를 버럭 냈다. 당일 오후 누군가 고 의원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어왔다. ‘김효재’라는 이름이 떴고, 첫마디가 “돈을 왜 돌려주는 겁니까”였다. 고 의원은 “제 마음이 그러니 그냥 받아주십시오”라고 응대했으며, 김 수석은 “알겠습니다”라고 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무너진 ‘침묵의 카르텔’=박 후보 캠프 관계자들은 그동안 검찰 조사에서 일제히 돈 봉투 전달 사실을 부인하면서 ‘침묵의 카르텔’을 형성해왔다. 하지만 고씨의 고백으로 카르텔이 무너졌다.
수차례 검찰조사에서도 완강히 버텨온 고씨가 왜 심경의 변화를 일으킨 것일까. 우선 박 의장과 김 수석 등 윗선에서 책임을 회피하며 실무자들에게 부담을 떠넘기는 행태에 크게 실망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고씨는 ‘고백의 글’에서 “진실을 감추기 위해 시작된 거짓말이 하루하루 들불처럼 번져 나가고, 이로 인해 이 사건과 전혀 관련 없는 사람들까지 허위진술을 강요받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더 이상의 무고한 희생자가 나와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박 의장은 지난달 18일 해외순방에서 귀국한 직후 돈 봉투 살포 의혹과 관련,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뗐다가 고씨가 진술을 번복한 뒤에야 “모두 저의 책임”이라고 입장을 바꿨다. 고씨는 김 수석에 대해 “그분이 처음에 ‘고 의원과 일면식도 없다’고 거짓 해명을 하면서 여기까지 일이 이어졌다”며 실망감을 드러냈다.
고씨의 심경변화에는 검찰이 확보한 증거도 한몫을 했다. 고씨는 “검찰은 이미 진실을 감추기에는 너무나 명백한 증거를 가지고 있었다”고 밝혀 검찰 수사가 상당히 진척됐음을 시사했다. 검찰은 자금출처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캠프 관계자들이 전대 직전 라미드그룹으로부터 받은 수표 5000만원을 현금화한 사실을 확인했다. 검찰은 이 자금이 돈 봉투 살포에 활용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
김재중 기자 j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