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칭 포청천’ 왕리쥔 美로 망명 시도… ‘공청단 VS 태자당’ 中지도부 권력암투

입력 2012-02-09 22:05

정치적 위기에 처한 중국 고위 관리가 기밀서류와 ‘폭로성’ 서신을 들고 미국 공관에 들어가 망명을 시도한 뒤 중국 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어 파문이 일고 있다.

이번 사건이 중국 차기 지도자인 시진핑(習近平) 부주석의 미국 방문 직전인데다 올 가을 지도부 교체를 앞둔 시기에 벌어졌다는 점에서 정치·외교적 파장이 만만찮을 것으로 보인다.

보시라이(薄熙來) 충칭시 서기의 오른팔로 최근까지 충칭시 공안국장을 지낸 ‘충칭 포청천’ 왕리쥔(王立軍·53) 부시장은 지난 6일 저녁 쓰촨(四川)성 청두(成都)에 있는 미국 영사관에 들어가 정치적 망명을 요청했다.

왕 부시장은 당시 기밀 서류와 함께 ‘전 세계를 향해 보내는 공개 서신’을 소지하고 있었다. 이에 중국 당국은 경찰력으로 영사관 건물을 봉쇄한 채 미국 측에 압박을 가해 하루 뒤인 7일 밤 왕 부시장 신병을 넘겨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당국은 왕 부시장을 베이징으로 소환해 엄중한 조사를 벌이고 있으며 보 서기에 대해서도 전면적인 조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 서기는 올 가을 18차 당대회에서 정치국 상무위원 진출이 유력했던 태자당(薄一波 전 국무원 부총리 아들)이라는 점에서 이번 사건이 중국 지도부의 권력 암투 과정에서 불거졌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베이징 정가에서는 이에 따라 권력 재편을 앞두고 공청단과 시 부주석이 포함된 태자당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홍콩 언론은 이번 사건을 2006년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이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과 권력투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천량위(陳良宇) 상하이 서기가 부패 문제로 낙마했던 것과 비교했다.

더욱이 왕 부시장이 청두 영사관에 머무르고 있던 하루 동안 미국과 중국 사이에는 외교적으로 미묘한 상황이 전개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측은 치외법권 지역인 자국 공관에 들어와 정치적 망명을 신청한 인사를 중국 측에 넘겨줬다는 점에서 인권단체들의 비판을 받게 됐다.

미국에 본부를 둔 반체제 사이트 보쉰(博訊)은 왕 부시장이 갖고 있었던 중요 서류들은 이미 ‘해외’로 넘겨졌다고 전했다. 왕 부시장은 공개 서신에서 보 서기를 ‘당내 최대의 위선자’라고 표현하면서 “만약 이러한 간신이 정권을 장악한다면 중국의 미래에 최대의 불행이며 민족적 재난”이라고 비난했다.

베이징=정원교 특파원 wkch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