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거짓말에 은폐 의혹까지 더한 ‘돈봉투’
입력 2012-02-09 17:42
2008년 한나라당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과 관련해 박희태 국회의장이 전격 사퇴했다. 헌정사상 검찰 수사와 관련해 현직 국회의장이 불명예 퇴진한 것은 처음이다. 매우 유감스럽다. 숱한 정치인 가운데 신망이 두터운 원로가 맡게 되는 국회의장이 비위로 낙마하는 광경은 우리 정치의 현주소를 보여 주는 것 같아 민망하기 짝이 없다.
박 의장의 사퇴는 만시지탄이다. 새누리당 고승덕 의원이 전당대회 당시 300만원이 든 돈봉투를 받았다가 되돌려준 사실을 지난달 4일 폭로하자 박 의장은 “모르는 일”이라며 사퇴를 거부했다. 당 안팎에서는 즉각 정치적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는 의견이 나왔으나 박 의장은 비서였던 고명진씨가 이 돈을 돌려받은 사실을 당시 선거캠프 상황실장이던 김효재 현 청와대 정무수석에게 직접 보고를 했다는 진술을 하자 뒤늦게 사퇴를 결심했다. 국가권력 서열 2위인 국회의장의 권위를 실추시키고, 자신의 소속 정당에 거듭 누를 끼쳤으며, 본인이 결백하다는 주장의 진정성을 잠식하는 처신이었다.
당초 “되돌려 받은 300만원을 개인적으로 썼고 다른 곳에는 보고하지 않았다”던 고씨가 진술을 번복하면서 이번 사건을 은폐하려는 조직적 기도가 있었다는 점을 시사하고 나선 것은 충격적이다. 그는 모 언론사에 전달한 글에서 “책임 있는 분이 자기가 가진 권력과 아랫사람의 희생만으로 위기를 모면하려는 모습을 보면서 결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며 김 수석을 겨냥했다. 김 수석은 그동안 돈봉투 사건에 대해 전혀 몰랐으며 고승덕 의원과는 얘기를 나눈 적도 없다고 부인해 왔다.
고씨 주장의 진위는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가려질 것이다. 그의 폭로가 사실로 확인된다면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했던 이들은 즉시 정계를 떠나야 할 것이다. 국민을 향해 거짓말을 일삼는 행태는 정치의 존재기반 자체를 부정하는 일이다. 검찰은 돈봉투 사건의 조직적 은폐 기도가 있었는지도 철저히 수사해 국민 앞에 공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