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상온] 영화의 힘
입력 2012-02-09 17:50
대중에 끼치는 영화의 영향력을 가장 먼저 간파한 것은 공산주의였다. 레닌은 일찍부터 대중에게 원하는 것을 각인시키는 데는 영화를 따라갈 수단이 없음을 인식하고 선전 선동의 최고 매체로 영화를 적극 이용했다. 그것이 현실의 반영이든 아니면 현실의 왜곡 또는 조작이든 관계없이.
대표적인 작품이 무성영화 시절인 1925년 소련의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이 만든 ‘전함 포템킨’. 오늘날 몽타주 기법의 효시로 꼽히면서 뛰어난 예술영화로 대접받는 영화의 고전이다. 하지만 내용 면에서는 1917년 제정 러시아 차르 체제를 뒤엎은 공산혁명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전형적인 선전영화였다.
선전도구로서 영화의 기능을 십분 활용한 또 다른 예가 나치 독일이었다. 히틀러는 선전장관 요제프 괴벨스를 시켜 제국영화연구소를 설립하게 하고 1933년부터 45년까지 1200편이 넘는 선전영화를 제작했다. 괴벨스는 특히 선전영화도 재미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다큐멘터리 외에 인기스타와 유명 감독을 기용한 극영화를 많이 만들었다.
그러나 대중에 대한 영화의 영향력 발휘는 정치적 목적 등 의도가 개입된 선전영화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단순한 상업영화나 예술을 위한 예술영화도 때로 의도하지 않았던 영향을 관객에게 끼친다. 그게 바로 현실이 아니면서도 관객들에게 현실로 느끼게 하는 ‘현실 아닌 현실’ 영화의 힘이다.
최근 이런 영화의 힘을 느끼게 하는 사례들이 줄을 잇고 있다. ‘도가니’에서부터 ‘부러진 화살’을 거쳐 지난 2일 개봉한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까지. ‘도가니’와 ‘부러진 화살’이 사법부 비판의 물결을 몰고왔다면 ‘범죄와의 전쟁’은 검찰을 공격의 표적으로 만들어놨다.
1980∼90년대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에서 검사들은 폭언에 폭행을 마구 휘두르는가 하면 금품을 받고 수사를 무마시켜주기도 한다. 물론 허구다. 그런데도 영화를 본 이들은 현실의 검사들을 비난한다. 허구 속의 검사를 현실의 검사와 동일시한 탓이다.
따라서 욕을 먹는 검찰은 억울할 수 있다. 하긴 ‘도가니’와 ‘부러진 화살’로 인해 비난 받는 판사들도 억울하긴 마찬가지일 게다. 설령 두 영화가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것이라 해도 결국은 허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가 허구라고는 해도 사회 고발이나 사회 풍자 같은 기능을 가질 수 있음을 감안하면 마냥 억울해할 일만은 아니다. 혹시라도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영화의 힘을 빌어 시정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김상온 논설위원 so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