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 대책과 현실] ‘교사 직무유기 범위’ 논란… 양천署, 강서署 “학교폭력 방조” 교사 수사
입력 2012-02-08 21:55
학교폭력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는 이유로 현직 교사가 또 경찰 수사 선상에 올랐다. 서울 양천경찰서가 학교폭력 피해학생의 담임교사를 직무유기 혐의로 불구속 입건한 데 이어 2번째다. 교사가 학교폭력에 소극적으로 대응한 것이 형법상 직무유기에 해당하는지를 놓고 논란이 커지고 있다.
서울 강서경찰서는 8일 학교폭력과 관련 학부모의 진정이 접수돼 담임교사를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했다. 경찰에 따르면 학교폭력 피해학생 이모(13)군의 아버지는 지난달 10일 “담임교사와 교장이 학교폭력을 막지 못한 데다 은폐하려고 했다”며 이군이 다니는 학교 교장과 담임, 학생부장교사, 상담부장 교사 등 4명에 대해 진정서를 제출했다.
이군은 지난해 3∼12월 동급생 7명으로부터 학교와 동네에서 성추행을 당하거나 주먹과 발 등으로 집단 폭행을 당해 정신치료를 받고 있다. 이군의 아버지는 지난해 12월 27일 가해학생을 처벌해달라는 진정서를 경찰에 접수했다. 경찰은 4일 뒤 가해학생 7명을 상습폭행 등의 혐의로 가정법원에 송치했다.
해당교사는 경찰 조사에서 “이군 아버지가 지난해 12월 7일 학교에 이 사실을 알리기 전까지는 내용을 전혀 몰랐다”며 “이틀 뒤 9일 학교폭력자치위원회를 열어 조치를 하고 있다”고 진술했다. 경찰 관계자는 “진정내용과 해당교사의 진술에 엇갈리는 점이 많다”면서 “더 조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 양천경찰서는 지난 7일 다른 중학교에서 학교폭력 피해를 본 학생의 담임교사를 직무유기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담임교사가 폭력 사실을 알았지만 아무 조치를 하지 않은 사실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경찰청은 이미 ‘학교폭력에 대처하는 교사가 정당한 이유 없이 직무를 의식적으로 방기하거나 포기했다고 판단되면 형사입건할 수 있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하지만 교사의 행동 중 어디까지가 직무유기인가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경찰이 직무유기 혐의를 적용하려면 해당 교사가 정당한 이유 없이 직무를 수행하지 않은 점을 입증해야 한다. 초·중등교육법은 교사의 직무범위를 ‘법령에 따라 학생을 교육한다’고 규정하고 있어 교육 직무행위가 어디까지인지 모호한 상황이다. 대법원 판례도 직무에 관한 의식적인 방임, 포기로만 직무유기를 한정했다. 태만, 착각 등은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때문에 교사들은 학교폭력의 심각성에 공감하면서도 경찰의 대처에 반발하고 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김동석 대변인은 “명백한 직무유기는 경찰의 자의적인 기준이 될 수밖에 없다”며 “교원의 사기저하, 교권침해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역시 “사실관계가 확인되기도 전에 학교폭력 발생의 모든 책임을 한 교사에게 전가하는 것은 교권침해를 넘어 교사 개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중대한 사안”이라며 “경찰의 희생양 찾기식 접근은 학교폭력 해결을 어렵게 할 뿐”이라고 비난했다.
조원일 기자 wch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