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임미정] 외계인의 패스워드

입력 2012-02-08 18:10


어렸을 때 읽은 책 중에서 외계인에 관한 사이언스 픽션물이 있었다. 어느 날, 지구 정보부 고위급 책임자 A에게 공원에 외계 비행선이 왔으며 그 이후로 행적을 알 수 없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책임자 A는 지구의 중요정보가 새나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는 곧 스파이 외계인 혹은 외계인에게 잡혀서 칩이 내장된 사람을 찾으려 특별수사팀을 구성한다.

수사를 진행할수록 사건은 오리무중에 빠지고, 고급정보는 계속 새나갔다. 외계인이 도착하던 날 밤, 공원에서 산책하던 모든 사람과 새나간 정보를 알고 있던 사람 중심으로 수사망을 좁혔다. 그러나 모든 사람은 결백했다. 결국 A는 위에서 자기를 의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기가 막혔다. A도 그날 밤 공원에서 산책을 했고, 별일 없이 돌아와 잠자리에 들었는데….

어느 날 A는 모든 일에서 손을 떼라는 명령을 받았고, 억울한 마음을 달래려 문제의 공원에 산책을 나간다. A는 그날 밤의 일을 되짚어 보며 걷는 중에, 혹시 내가 외계인에게 잡혔었고, 스파이가 되었던 것은 아닐까 하고 불현듯 생각을 하게 된다. 그 순간 A의 몸은 폭발하고 만다.

A는 그날 밤 외계인에게 잡혀 칩이 내장되었으며 본인도 모르는 사이 스파이 역할을 하고 있었고, 스스로의 존재에 의심을 가지는 것이 A의 폐기를 위해 외계인이 심어 놓은 패스워드였다는 이야기이다.

어느 여름날 이 소설을 읽고 나서 식은땀을 흘렸었다. 지금도 이 이야기를 떠올릴 때마다 오싹한 느낌이 있는데, 그건 아마도 중요한 사실에 대한 암시가 들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인생의 목적은 사회적 성공을 하거나, 예쁜 가정을 잘 이룩하거나 하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우리로서는 알 수 없는 어떤 이유로 인해 어려운 시간들이 찾아온다. 힘들더라도 그런 시간은 개개인마다 배워야 할 것을 밀도 있게 경험해 보는 시기일 때가 많다. 그래서 후에 돌이켜 보면 그런 시간이 없었다면 아직도 조그만 사고의 틀 안에서 헤매고 있었겠다 하며 오히려 시련의 시간에 대해 고맙게 느낄 때가 있다.

새로운 사고의 틀은 기존의 틀을 부수는 아픔 뒤에 오지만 그것만큼 큰 배움이나 성장은 없다. 그래서 나는 진정으로 배운다는 것은 그저 몰랐던 정보를 새롭게 알게 된다는 것이 아닌, 내가 불변하다고 생각했던 사고방식의 틀을 깨고 다음 단계의 인식으로 확장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고대의 과학자들이 지구가 평평했음을 의심했기에 다음 단계의 과학이 발전할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지금도 가끔 의심해본다. 내가 지금 보고 믿고 있는 것이 과연 본래 그러한 모습인가. 삶이라는 비밀에 있어서 패스워드는 내 의식의 가장 불변한다고 생각되는 곳, 깊은 곳을 의심해보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임미정 한세대 교수·하나를위한음악재단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