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노숙인을 보는 크리스천의 시각
입력 2012-02-07 21:23
신명기 15장
저는 노숙인을 섬기는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성도도 주로 노숙인입니다. 그래서 노숙인 섬김 사역에 대해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인간의 설움 중에 배고픔이 가장 아프다고 합니다. 그 다음은 누울 집이나 방이 없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노숙인은 말 그대로 집이나 방이 없어 이슬을 맞으며 길거리에서 자는 사람입니다. 우리나라 노숙인은 정부 공식 집계로 현재 1만3000명이 넘습니다. 신용불량, 실직, 가족해체 같은 현상이 심화된 탓이지요. 헌데 노숙인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이미지는 부정적입니다. 나태, 무기력자에 혐오감을 유발하는 자이고 잠재적 질환자이며 인간쓰레기로 취급받는 것입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노숙인은 늘 사회적 단속과 배제 대상입니다.
그러나 노숙인도 이 사회의 동등한 시민입니다. 어쩔 수 없이 처해진 길 위의 삶이지만 모두가 가족이며 친구이고 이웃라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특히 기독교 입장에서 바라본 그들은 모두가 한 형제이고 자매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우리의 이웃인 것입니다.
탈무드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세상에 가난한 자가 있는 것은 부자들로 하여금 선을 베푸는 기회를 주기 위함이다.” 주님의 마음을 본받아 이웃에게 나눔의 손을 펴는 크리스천이 돼야 하겠습니다. 크리스천의 손길을 통해 세상이 아름다워지고 따뜻해지길 기도합니다. 그렇다면 크리스천들은 왜, 그리고 어떻게 어려운 이웃을 구제하여야 할까요?
첫째, 구제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신 15;7∼8). 하나님께서는 복을 주시기 위해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구제에 대한 말씀을 하시면서 ‘반드시’란 말씀을 세 번이나(8∼11절) 강조하셨습니다. 그만큼 구제는 중요한 것이고 성도가 꼭 실천해야 하는 것입니다. 레위기 19장 18절은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하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구제할 때에 생색을 내거나 자만심을 가져서는 안됩니다. 먹고 입고 자고 남은 돈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땅사라고 준돈이 아니라 가난한 자를 도우라고 주신 것입니다.
둘째, 구제는 아끼지 말고 넉넉하게 베풀어야 합니다(8절). 구제를 하되 인색함으로 할 것이 아니라 넉넉한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구제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해야 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넉넉한 생활은 아니었지만 풍성한 나눔이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4장에 보면 밭과 집이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것을 팔아 사도들에게 주워서 그것으로 어려운 사람들의 필요에 따라 나눠 주었습니다. 초대교회 부흥의 원인 중 하나가 아름다운 선행입니다. 잠언 19장 17절은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셋째, 구제하는 자는 더 풍성한 복을 누리기 때문입니다(10절). 구제하면 더욱 풍족해 집니다. 잠언 11장 24절은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있는 것을 다 털어서 구제하면 더욱더 부하게 되지만 구두쇠처럼 아끼면 더욱 가난해진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제대로 된 사랑을 합시다. 진리의 성경 말씀과 같이 영양가 있는 예수 사랑을 주고받아야 될 줄 믿습니다.
박희종 목사(버클리중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