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코너-정원교] ‘스바다’만 잘 치르면?

입력 2012-02-07 21:50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관건은 여전히 개혁·개방이다.”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가 다시 개혁을 들고 나왔다. 중국을 방문하고 귀국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광둥성 광저우(廣州)에 가는 길에 동행한 뒤 지난 4일 이 지역 전기회사에 들렀던 자리에서다.

이번에는 ‘샤오핑 퉁즈(小平同志)’의 등에 올라탔다. “20년전 샤오핑 퉁즈가 80세가 넘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광저우에 와서 심오하고도 원대한 역사적인 발언을….” 당 중앙에서 개혁을 역설하는 자신의 목소리가 별로 먹혀들지 않자 남순강화(南巡講話) 20주년이라는 타이밍을 놓치지 않았다.

원 총리는 이곳 농민들과 가진 좌담회에서는 “농민들의 선거권은 꼭 보장돼야 한다”며 농민 자치권과 촌민위원회 위원 직선을 강조했다. 그는 지난달 31일에는 국무원 제6차 전체회의를 소집했다. 이 회의에서는 ‘정부공작보고서’ 초안을 채택해 각 지방정부에 보냈다. 다음달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정부공작보고를 하기 전 각계 각층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서였다. 이 자리에서 그는 경제체제와 정치체제 등 각 영역의 개혁을 멈춤 없이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민대중이 정부를 비판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고도 했다.

사실 중국 지도부는 정치 개혁이 지금 핫이슈로 떠오르는 것을 바라지 않는 분위기다. 올 가을 새 지도부 등장을 앞두고 혹시 ‘풍파’가 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순강화 20주년에도 불구하고 당 중앙 차원 기념행사조차 열지 않았다.

하지만 원 총리 발언에서 보듯 정치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중국 사회에서 엄연히 일정한 세력을 이루고 있다. 개혁파로 고인이 된 후야오방(胡耀邦) 전 총서기의 아들 후더핑(胡德平)이 지난달 중순 베이징에서 개최한 좌담회에서는 부패나 빈부격차 등을 해결하기 위해 더욱 과감한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 쏟아졌다. 이 좌담회에서는 국가행정학원 교수가 “공산당 내에서 경쟁선거가 실시돼야 이익집단의 목소리가 낮아질 것”이라며 자유선거를 주장하기도 했다.

지난달 17일 자오쯔양(趙紫陽) 전 총서기의 7주기 추도식 때에는 네티즌들이 웨이보에 그를 애도하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태 당시 학생들의 민주화 요구 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하는 데 반대했던 그를 기억하면서 정치 개혁이라는 열망을 드러내 보인 셈이다. 당시 “공산당 차기 지도부는 자오 전 총서기와 그의 전임자였던 후 전 총서기로부터 배워야 한다”고 말하는 국무원 연구실 소속 연구원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이 아직까지 중국 사회에서 주류를 이루고 있는 건 아니다. 현재 당 지도부의 신경은 제18차 당대회를 뜻하는 ‘스바다(18대)’의 성공적인 개최에 온통 쏠려 있다. 중국 관료들 사이에서도, 지식인들 사이에서도 스바다만큼 관심을 끄는 화제는 없다. 하지만 그들 중 스바다 이후를 걱정하는 사람들은 의외로 많다.

견제 세력 없는 공산당 독재 아래서 갈수록 심해지는 부패나 엄청난 빈부 격차, 분출하는 이익 집단들의 목소리 등에 대한 해결책을 시진핑을 정점으로 한 차기 지도부가 제시할 수 있을 것인가. 베이징의 한 교수는 원 총리가 개혁을 주장하는 배경에는 부패 척결, 공평, 정의 없이는 체제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깔려 있다고 했다.

“중국 지도자는 덩샤오핑이 그랬던 것처럼 결단력있게 행동해야 한다.” 원만한 스타일로 알려진 시진핑이 권력의 정점에 오른 뒤 과연 소신있는 모습을 보여줄까. 중국 지식인들의 주문이 예사로이 들리지 않는다.

베이징=정원교 특파원 wkch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