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커스어학원 ‘토익·텝스’ 문제지 유출 수법… 볼펜형 스파이캠으로 찍고 특수개조 녹음기로 녹취
입력 2012-02-06 22:06
지난해 12월 일본의 한 회사원이 해커스어학원의 웹사이트에 게시된 토익 기출문제를 보고 시험에 응시해 단기간에 만점에 육박하는 점수를 받았다. 일본과 대만의 토익위원회는 곧바로 한국 토익위에 해커스어학원 웹사이트를 거론하며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한국토익위도 해커스어학원에 5년간 문제유출 의혹을 제기했다. 해커스어학원 측은 의혹을 부인했다. 오히려 한국토익위에 문제의 동일성 판단에 필요하다며 실제 문제를 보여 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검찰 수사로 해커스어학원이 토익 및 텝스 문제를 조직적으로 유출했고, 이를 바탕으로 교재 및 강의자료를 만들어 단기간에 ‘족집게 강의’라는 명성을 얻게 된 사실이 확인됐다.
검찰 조사결과 해커스어학원은 시험업무 매뉴얼, 후기 작성업무 매뉴얼, 녹음·녹화 지침 등을 만들어 계획적으로 문제를 유출했다. 독해 등은 연구원들이 2문제 정도씩 문제만 외워 시험이 끝난 뒤 회사 내부 통신망과 연결된 PC방에서 1시간30분내 전송토록 했다.
리스닝은 몰래 녹음한 뒤 외국인 연구원에게 전송해 문제를 복원토록 지시했다. 연구원들이 올린 지문과 정답은 각 시험총괄 담당자를 통해 실시간으로 어학원 웹사이트에 게재된 뒤 다음달 아침에 삭제하고 교재 편찬에 활용됐다.
어학원 측은 국가영어능력평가시험(NEAT)이 ‘인터넷 기반 토플시험(IBT)’ 방식으로 진행돼 녹음이 곤란해지자 해외에서 구입한 고가의 특수 녹음기를 변형해 헤드폰에 장착하는 방법으로 녹음했다. 또 영상 녹화를 위해 마이크로렌즈가 장착된 볼펜형 녹화장비를 동원했다.
해커스어학원은 2010년 다른 어학원이 토익 기출문제를 무단 유출해 기소된 기사를 보고 법무팀과 기출문제 변형 과정에서 저작권법에 걸리지 않도록 논의하는 등 단속에도 철저히 대비했다.
검찰 수사는 국제사회에서 한국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심어준 시험문제 부정유출에 경종을 울렸다는 데 의의가 있다. 그동안 미국 ETS는 한국 수험생의 영어실력에 의문을 품고 한국인만을 위한 새로운 토익문제를 개발하기도 했다.
정부가 토익시험을 대체하기 위해 만든 NEAT 문제가 유출돼도 막을 방법이 없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교육과학기술부는 2016년부터 수능 외국어 영역을 NEAT로 대체하는 방안을 올해 최종 결정할 예정이다. 창원대 등 7개 대학은 이미 NEAT를 수시전형 응시 자격에 포함시켰다. 경찰청도 2014년부터 순경 공채 영어시험을 NEAT 성적으로 대체할 계획이다.
검찰 관계자는 6일 “어학원이 전 직원을 동원해 조직적으로 시험문제를 불법유출한 구조적 비리 일체를 파헤친 최초의 사례”라며 “이번 수사는 시험의 공정성과 국가 신인도를 회복하는 데 기여했다”고 말했다.
김재중 기자 j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