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석환의 삶과 신앙] 희망 안에서

입력 2012-02-06 18:34


언젠가 독일인 교수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2차 세계대전 때 소련에 진주했던 많은 독일 군인들이, 패전 후 포로가 되어 시베리아로 끌려가 비밀리에 중노동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전쟁 후 40년이 지나서 독일의 민간단체가 주동이 돼 그들을 구출해 내는 작업을 했는데 오랜 세월이 지나 대부분의 포로들이 죽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단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때까지 살아있는 사람들 대부분은 옛날 전쟁터에 나올 때, 부모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서 받은 선물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던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보잘 것 없는 물건이라도 그것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던 사람들이 살아남았던 이유를 그 교수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었다. “그것은 이미 물건이 아니다. 40년을 냉혹한 벌판에서 살아남아 온 그들에게, 그것은 닳아 없어질 선물이 아니라 신앙의 대상이었고, 언젠가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다시 보리라는 믿음의 징표들이었다! 그들은 그 희망의 표징에 마음을 담고, 그것에 의지하여 마음을 강하게 먹었기 때문에 그 혹독한 세월들을 견뎌내며 살아남을 수 있었다.”

우리 인간은 어떻게 보면 희망을 먹고사는 동물이라 표현할 수 있겠다. 사회심리학자인 에릭 프롬은 인간을 가리켜 ‘호모 에스페란스(Homo Esperance·희망하는 인간)’라고 말한 바 있다. 실제로 ‘인간’을 뜻하는 헬라어 단어 ‘anthropos’는 ‘위를 쳐다보고 걷는 자’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때문에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돈이 없거나 명예나 지위가 없는 사람이 아니라, 희망이 없는 사람이라 말해도 좋을 것이다. 신약성서 27권 중 가장 많은 책의 저자인 사도 바울은 일생의 과정이 고통과 핍박으로 점철된 고난의 삶을 산 자였다. 그런데 그가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는 희망이란 단어이다. 사도 바울의 신학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Say Yes to Life in spite of Everything!’ ‘그러므로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라는 희망의 신학일 것이다.

자신에 대해 성급하게 포기하거나 주저할 때, 때론 주변 환경에 실망하고 낙심할 때 내가 즐겨 읽으며 새 힘과 용기를 얻는 것은 바울의 서신들이다. 그때마다 바울의 서신들은 오늘 배달된 반가운 편지처럼 새롭고 신선하게 다가온다. 마치 어머님의 마음처럼, 조용히 내 마음에 다가와 새 힘으로 내 삶을 부추겨 주곤 한다.

쉬휘(Gail Sheehy) 여사는 ‘Path Finders(통로를 찾은 사람들)’란 책을 써서 베스트셀러가 된 적이 있다. 이 책에서 그녀는 어떤 사람이 정말 만족감을 가지고 살아가는가? 하는 질문을 가지고 미국 중산층의 중년 이상 남녀 수천 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그 결과 일곱 가지의 조건들이 삶의 ‘통로(길)를 찾은 사람들’ 가운데 나온다는 것이다. 첫째는, 자기 삶의 뜻과 방향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고 둘째는, 자기 인생을 헛되게 살아 왔다고 자책하거나 실망하지 않는 사람들. 셋째는, 비록 나이가 들었어도 몇 개의 장기계획을 세우고 노력하는 사람들. 넷째는, 주위 사람들을(혹은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는 사람들. 다섯째는, 자기에 대한 비평에 너무 신경 쓰지 않는 사람들. 여섯째는, 미래에 대해 큰 두려움이 없는 사람들. 마지막 일곱째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와 신앙을 삶의 중심 속에 희망으로 간직한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그녀의 일곱 가지 ‘행복한 사람들, 삶에 만족을 느끼며 사는 사람들’의 조건들 속에는 눈에 보이는 가치나 뛰어난 스펙이나 소유물의 조건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희망이란 조건이 그 중심에 있었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는 희망 안에서 행복과 만족감을 더 느낀다는 말이다.

바울은 예수의 설교를 그의 삶에 실천하며 살다간 사람이었다. 늙고 병든 바울이 감옥 안에 갇혀 있을 때 빌립보 교회에 편지를 쓰는데 이런 말을 하고 있다. “내가 크게 기뻐하는 것은, 내가 어떠한 형편에서든지 만족하기를 배웠기 때문입니다. 나는 풍부할 때나, 궁핍할 때나 모든 경우에 대처하는 비밀을 배웠습니다. 그 비밀이란 내게 능력주시는 하나님 안에 거할 때, 그 희망 안에서 나는 무엇이나 할 수 있다는 믿음입니다.”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목회상담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