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김진홍] 사이버 직접민주주의 문은 활짝 열렸는데
입력 2012-02-06 18:02
우리 정치사에서 사이버 직접민주주의가 시작된 시점은 2002년일 것이다. 당시 새천년민주당이 정당개혁을 내세우며 대통령 후보 경선과정에 일반 유권자들을 참여시키기로 결정하자 180만 명이 모여들었다. 실제 투표권이 주어지는 일반 유권자 몫의 대의원 수가 3만5000명이었던 점을 감안할 때 폭발적인 반응이었다. 여기에는 노사모를 비롯한 노무현 전 대통령 지지자들의 역할이 컸다. 이들은 경선 이전부터 사이버공간에서 활발한 토론을 벌이며 ‘노무현이 대통령이 돼야 하는 이유’를 설파하며 위력을 발휘했다. 그 결과 노무현 후보는 세간의 주목을 받지 못하던 비주류 정치인에서 제1야당의 대통령 후보가 되고, 대선에서 우여곡절 끝에 승리를 거머쥐었다.
2002년 시작된 디지털혁명
노무현 정부 출범의 일등 공신인 사이버공간은 정책을 비판하는 데에도 적극적이었다. 다수의 네티즌들 의견과 반대로 2003년 가을 이라크 추가 파병이 결정됐을 때 진보·좌파 세력이 온라인상에 ‘파병반대 국민연대’를 조직해 저항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노 전 대통령을 청와대에 입성케 한 점과 이라크 추가 파병반대 운동은 디지털 혁명이 공직 후보자 선출은 물론 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소수 엘리트에 의해 좌지우지되던 정당정치에 획기적인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경종을 울린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당들은 둔감했다. 정당들이 민심을 계속 외면하면서 시민들의 정치 참여욕구는 더욱 커졌다. 반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모바일 등 정보통신 기술은 급속도로 진화했다. 이 둘이 어우러지면서 기존 정당들은 지난해 치명상을 입었다.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사상 처음으로 무소속 후보가 당선된 것이다.
여야는 뒤늦게 부산하다. 간판을 바꿔 달고 올 4·11 총선에 모바일 투표 도입을 검토하는 등 점점 커져만 가는 SNS와 모바일의 힘을 수용하려 하고 있다. 1·15 전당대회에 64만여 명의 시민을 참여시킨 민주통합당은 올 12월 대선에 내세울 후보를 완전개방형 경선으로 선출할 계획이다. 이 경선에는 500만 명 이상이 참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당원이 200여만 명이라는 한나라당도 유사한 방법으로 대선후보를 뽑을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SNS와 모바일 정치의 장점은 무당파(無黨派)를 줄이고, 직접민주주의를 확대한다는 데 있다. 정치권 입장에서 보면 정당들이 보다 국민 곁으로 다가가는 정당 민주화의 전기가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 돈 안 드는 선거문화 정착에도 기여할 전망이다.
개선해야 할 점 역시 적지 않다. 디지털 기술 및 정보 활용에 능숙한 집단의 의견이 과도하게 반영되지 않도록 디지털 격차를 해소하는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 흑색선전이나 한풀이가 난무하거나, 포퓰리즘을 부추기는 장(場)이 되는 것도 막아야 할 것이다. 중복투표와 공개투표, 투표 매수 행위, 투표 집계 시스템의 안정성, 해킹 등 기술적인 문제도 미해결 상태다.
올해 어떤 정권 만들어낼까
개인적으로는 SNS 혁명 속에 치러질 올 대선에서 어떤 정권이 탄생될지가 관심이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은 한결같이 불행했다. 임기 말을 맞은 이명박 대통령도 환호 속에 퇴임할 것 같지는 않다.
이번 대선을 통해 국민 모두에게 추앙을 받는 대통령이 나와 최상의 정치를 지향하기 바라는 마음이다. 하지만 네티즌들이 열광했던 노무현 정부의 뒤끝이 좋지 않았던 탓인지, 과연 그렇게 될 수 있을까 고개가 갸우뚱거려지는 것도 사실이다
김진홍 논설위원 j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