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재중] ‘도가니’와 ‘부러진 화살’
입력 2012-02-06 18:20
영화 ‘부러진 화살’이 흥행 돌풍을 일으키면서 사법부가 또다시 도마에 올랐다. 지난해 영화 ‘도가니’와 같은 열풍이 재연될 조짐을 보이자 사법부가 이례적으로 성명서를 발표했다. 대법원은 “‘부러진 화살’은 흥행을 염두에 둔 예술적 허구이며 전체적으로 사실을 호도하고 있다”고 밝혔다.
두 영화는 재판을 소재로 사법부의 문제점을 지적했다는 점에서 맥을 같이한다. 하지만 내용을 깊이 들여다보면 경우가 좀 다르다.
‘도가니’는 광주 인화학교의 장애인 학생들이 교장과 행정실장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는 사실 자체에 대해 다툼의 여지가 없다. 판사 출신 변호사에 대한 전관예우로 피고인들이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게 문제가 됐을 뿐이다.
하지만 ‘부러진 화살’은 핵심 쟁점을 둘러싸고 법원 측과 피고인이었던 김명호 전 교수 측의 주장이 엇갈린다. 석궁에서 화살이 발사된 것이 우발적인지 계획적인 범행인지, 내복과 조끼에는 피가 묻어 있는데 왜 와이셔츠에는 혈흔이 없는지, 부러진 화살은 왜 사라졌고 증거로 제출되지 않았는지 등에 대해 양측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김 전 교수의 첫 민사 항소심 재판장을 맡았었기 때문에 누구보다 사건 내막을 잘 알고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도가니’의 경우 양 대법원장이 직접 관련 재판을 맡지 않았기 때문에 판결문을 챙겨보고 영화를 관람했다.
양 대법원장은 1997년 5월 서울고법 민사11부 부장판사로 재직할 때 김 전 교수가 제기한 ‘부교수지위확인’ 관련 소송 재판장을 맡았다. 양 대법원장은 당시 판결에서 “원고(김 전 교수)가 부교수 지위에 있다거나 피고 법인(성균관대)에게 부교수로 승진임용할 의무가 있음을 전제로 하는 원고의 이 사건 청구들은 이유 없다”며 기각했다. 김 전 교수는 이에 반발해 대법원 정문 앞에서 양 대법원장을 비판하는 피켓을 들고 1위 시위를 벌였다.
양 대법원장은 지난달 30일 “영화 내용이 잘못됐거나 비판할 점이 많고, 법원 공격이 흥행 요소로 인식되는 풍조가 생기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며 부정적인 인식을 드러냈다.
‘도가니’는 아동·장애인 성폭행에 대한 국민의 법감정을 고조시켜 대법원이 이들 범죄를 엄벌하도록 양형기준을 강화하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부러진 화살’은 사법부에 대한 테러를 미화하고 있다는 대법원 반응에서 보듯 사법부의 변화를 이끌어내기는 역부족일 듯싶다.
김재중 차장 j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