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이명희] 한국과 미국의 임기말 풍경
입력 2012-02-06 22:16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부인 미셸 오바마는 얼마 전 NBC 방송의 ‘제이 레노의 투나잇쇼’에 나와 “남편이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졌고 늘 나에게 노래를 불러준다”며 남편 자랑을 했다. 재선에 도전하는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달 21일 한 모금행사에서 노래를 한 것에 대한 부연설명이었다. 미셸은 같은 방송의 ‘엘런 드제너러스 쇼’에선 진행자와 즉석에서 팔굽혀펴기 대결을 펼쳐 이겼다.
이명박 대통령 부부는 지난 설 손녀들을 데리고 재래시장을 찾았다가 곤욕을 치렀다. 손녀가 입은 패딩 점퍼가 수십만~수백만원에 달하는 명품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인 것. 친서민 이미지를 보이려고 재래시장을 찾았다가 역풍을 맞았다.
임기 마지막 해를 보내고 있는 너무 다른 미국과 한국의 대통령 부부 모습이다. 이 대통령 부부도 임기 3년차인 2010년 추석에는 KBS ‘아침마당’에 출연해 사적인 얘기를 들려줬고, 지난해 가을엔 야구장을 찾아 뽀뽀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해 내곡동 사저 부지매입 논란에 이어 형인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과 박희태 국회의장,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 등 측근들과 친·인척들이 줄줄이 비리혐의에 연루되면서 대통령의 영(令)은 서지 않고 차기 대권주자들의 목소리만 들린다. 대통령 지지율이 떨어진 데는 ‘747(7% 성장, 국민소득 4만 달러, 세계 7대 강국 진입) 공약’에 속고, 먹고살기 팍팍해진 데 대한 민초들의 실망이 깊게 깔려 있긴 하다. 그렇지만 핵심은 역시 측근 비리 문제다. ‘청탁하다 걸리면 패가망신 시키겠다’고 공언해놓고도 측근 비리를 없애는 데 실패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을 이 대통령 역시 뛰어넘지 못하고 임기말 증후군을 그대로 겪고 있다.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성장했으면서도 아직도 후진적 권력형 비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 얼마 전 사석에서 만난 경제부처 전직 장관은 “이제는 거버넌스(Governance·국가 지배구조)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때”라고 했다.
대통령 한 사람에게 너무 많은 권력이 집중되다 보니 비리가 싹틀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짧은 5년 단임 기간 동안 음지에서 함께 고생했던 정치적 동지들도 챙겨야 하고, 동문들도 살펴야 하다 보니 측근들을 중용하는 인사를 하게 되고 사돈의 팔촌까지 줄을 대려는 사람들이 문전성시를 이루다 보니 어느 가지에서든 곪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탄핵심판이 진행되던 2004년 당시 “이제 세상은 20세기 이념대립의 시대에서 ‘거버넌스’ 경쟁 시대로 바뀌고 있다. 피라미드형 지배구조가 네트워크형으로 바뀌어가고 있다”며 수평적 분권형 리더십을 강조했었다.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 선임 이코노미스트,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제보좌관을 지낸 조윤제 서강대 교수는 ‘한국의 권력구조와 경제정책’에서 지난 20년간 권력만을 지향하는 선동가들이 조장한 포퓰리즘에 의해 훼손된 한국 사회에서 이제는 국가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새로운 정치·경제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여당이 지지율이 떨어졌다고 당을 깨거나 새로운 간판을 달고 선거에 나서려는 행태가 되풀이되는 한 민주주의의 성숙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일갈한다.
영국 같은 내각책임제든 대통령중심제를 보완하든 5년마다 되풀이되는 악순환을 끝내고 싶은 게 모든 국민의 바람이리라. 퇴임 후 감옥에 가는 대통령 대신 지미 카터처럼 우리도 존경하는 전직 대통령을 한 명쯤은 갖고 싶다.
이명희 산업부 차장 mh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