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거래소 1년간 손놓더니 전격 처리… 대기업 특혜?
입력 2012-02-05 23:29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등의 횡령·배임 혐의 기소로 주식거래정지 위기에 놓였던 ㈜한화가 가까스로 고비를 넘겼다.
한국거래소는 5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한화를 상장폐지 실질심사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한화 주식은 6일부터 정상적으로 거래된다. 하지만 거래소가 이례적으로 주말에 신속하게 한화를 상장폐지 실질심사 대상에서 제외한 데다 기존 코스닥업체들의 상장폐지 사례 등에 비춰 ‘대기업 특혜’ 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시장 안정성과 투자자 보호 명목 발 빠른 면죄부=한화는 지난해 1월 김승연 한화회장 등 관계자들이 회사에 손실을 끼쳤다며 검찰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횡령 혐의로 기소한 사실을 지난 3일 오후 6시46분에 공시했다. 기소한 지 1년이 지나서야 공시한 것이다. 이에 대해 거래소는 한화가 상장폐지 실질심사 대상에 해당하는지 검토하겠다며 6일부터 한화 주식거래를 정지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통상 상장폐지 실질심사 대상인지 여부만 결정하는 데도 2주 이상 걸리는 절차와 달리 거래소는 주말 회의를 여는 등 신속한 행보를 통해 사실상 한화에 면죄부를 줬다.
거래소 유가증권시장본부 조재두 상무는 기자회견에서 “한화의 경영투명성 개선 방안에 유효성이 있다고 판단했다”며 “한화의 영업 지속성과 재무구조 안정성과 관련된 상장 적격성도 인정된다”고 강조했다.
조 상무는 “시장 안정성과 투자자 보호를 고려해 신속히 결정했다”고 이례적 주말결정의 배경을 설명했다. 10대그룹 계열사인 한화의 시가총액이 2조9000억원에 달할 정도로 비중이 큰 점을 고려한 셈이다.
거래소는 그러나 횡령·배임에 대해 늦게 공시한 데 대한 한화의 불성실공시법인 지정과 관련해서는 별도로 심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거래소가 한화에 부과할 것으로 예고한 벌점은 6점이다. 한화 측은 오는 14일까지 이의신청을 할 수 있다. 벌점 5점 이상으로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될 경우 1일간 한화 주식의 매매가 정지된다.
◇대기업 특혜, 형평성 문제 불거질 듯=이번 파문에서 가장 문제가 된 것은 한화 측의 지연공시와 이에 대한 거래소의 늑장대응 부분이다. 거래소는 당초 임직원의 배임·횡령 금액이 자본의 전액을 잠식하는 경우 상장폐지 실질심사 대상으로 결정했다. 하지만 지난해 4월부터 배임·횡령 금액이 자기자본 대비 5% 이상, 대기업은 2.5% 이상인 경우가 확인되면 상장폐지 실질심사를 할 수 있게 됐다. 한화가 공시한 혐의금액(899억원)은 자기자본 대비 3.88%다.
즉 검찰이 기소한 지난해 1월에는 한화가 상장폐지 실질심사 대상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거래소는 검찰 기소가 발표된 후 1년이 지나도록 한화의 배임·횡령 발생에 대해 조회공시조차 요구하지 않았다. 거래소는 지난해 태광산업의 횡령·배임 혐의보도에 대해 조회공시를 요구한 바 있다.
대기업에 대한 특혜, 즉 ‘대마불사’ 여부도 두고두고 논란거리가 될 전망이다.
유가증권시장에서 상장폐지 심사 대상까지 올랐다가 회사의 개선 계획과 소명을 인정해 거래정지 없이 심사 대상에서 제외된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다.
코스닥시장에서는 지난해 횡령·배임 사건을 겪은 13개 기업이 상장 폐지됐다. 또 지난해 유가증권시장에서 횡령·배임 발생이나 사실확인 공시를 한 기업 10곳 중 상장 폐지된 기업은 한 곳도 없지만 이들 업체는 모두 매매정지 기간을 거쳤다.
고세욱 기자 swk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