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중동] 러·中, 유엔 시리아 결의안 거부

입력 2012-02-05 23:23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對) 시리아 결의안이 상임이사국인 러시아와 중국의 거부권 행사로 채택되지 못했다.



안보리 15개 이사국들은 4일(현지시간) 시리아의 평화적 정권이양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최종 표결에 부쳤으나 13개국이 찬성한 반면, 러시아와 중국이 반대표를 던졌다. 최종 결의안 내용은 러시아와 중국의 반대를 의식,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 퇴진이나 무기 공급 중단 등의 조항을 삭제하는 등 당초 서방 및 아랍국가들이 제출한 초안보다 상당히 완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결국 러시아와 중국을 설득하지는 못했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시리아 땅의 비극에 대해 책임져야 할 것”이라고 러·중의 반대를 비난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결의안에 반정부 무장세력에 대한 요구사항이 없으며, 이는 시리아 정치 세력 간 대화의 결과를 오도할 수 있다”고 결의안 내용에 불만을 표시했다. 결의안 표결이 있기 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성명을 통해 “알아사드는 자신의 국민을 죽이는 행위를 즉각 중단하고 권좌에서 물러나라”고 말했다.

러시아가 결의안 채택을 반대하는 이유는 알아사드 정권과 대규모 무기수출 계약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방국들이 한 발 양보해 결의안 최종 초안에 정권 퇴진과 무기공급 중단과 관련된 내용을 포함시키지 않은 것이다. 러시아보다 반대 정도가 덜한 중국은 서방국 주도의 시리아 사태 해결 방안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에 분노한 아랍권에서 두 나라 상품 불매운동이 벌어지는 등 후폭풍도 거세다. 요르란의 무슬림 형제단 대표 함만 사이드는 이 단체 웹사이트를 통해 “무슬림과 아랍인들은 시리아 국민들을 지지하기 위해 두 나라 상품 불매운동에 동참할 것을 요구한다”고 촉구했다.

안보리 표결이 있기 하루 전(3일) 시리아 내 반정부 시위 거점 도시 홈스에서 정부군의 포격으로 최소한 260여명이 숨지는 등 수백명이 사상하는 최악의 대학살이 일어났다. 정부와 반정부 무장세력의 충돌이 시작된 이래 사망자 수는 7000명 이상인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아랍의 인권단체들은 대학살을 중단시키기 위해 국제사회의 개입을 촉구했다.

대학살에 분노한 해외 시리아인들은 베를린과 런던, 카이로 등 유럽과 중동의 시리아 대사관들을 습격했다. 이들은 시리아 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하다 대사관 영내로 들어가 기물을 파괴하기도 했다. 튀니지 정부는 대학살에 항의하는 뜻으로 시리아 대사를 추방했다.

워싱턴=김명호 특파원 m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