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으로 변한 축구장… 이집트 포트사이드 경기장서 관중들 난투극 최소 74명 참사
입력 2012-02-02 19:14
이집트에서 라이벌 축구팀 경기 후 관중 간 난투극으로 최소 74명이 숨지고 1000여명이 다쳤다. 수에즈 운하의 관문인 포트사이드에서 발생한 이 사건은 이집트에서 발생한 최악의 경기장 참사다. 세계적으로도 78명이 숨진 1996년 과테말라시티 사건 이후 가장 심각한 축구장 내 인명피해 사고라고 AP통신이 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사건은 포트사이드의 홈팀 ‘알 마스리’가 카이로가 연고지인 이집트 최강팀 ‘알 아흘리’를 상대로 뜻밖에 3대 1 승리를 거두자 벌어졌다. 두 팀은 이집트 리그에서 오랜 라이벌 관계였다.
경기 종료 직후 승리에 흥분한 홈팀 관중들이 경기장으로 뛰어들었고, 알 아흘리를 응원하던 원정팀 팬까지 우르르 몰려들며 서로 뒤엉켜 패싸움으로 번졌다.
한 원정팀 관중은 “홈구장 팬들이 먼저 공격했다. 돌이나 의자를 던지기도 하고 심지어 칼을 가진 사람도 있었다”고 AP통신에 전했다. 누군가 경기장 한쪽에 불을 지르는 것도 목격됐다. 어떤 이는 국영 TV와의 인터뷰에서 경기장에서 총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달아나던 관중이 좁은 출구로 한꺼번에 몰리면서 압사자가 생기는 등 인명 피해가 불어났다.
TV 화면에는 관중이 마구잡이로 폭력을 휘두르는 장면이 그대로 생중계됐다. 검은 제복을 입은 경찰들이 전혀 손을 쓰지 못하는 모습도 포착됐다. 이집트 다수당인 무슬림 형제단 소속 한 의원은 경찰이 경기장 안으로 칼을 갖고 들어가는 것을 막지 못했다고 비난했다.
현지 보건 관리인 헤삼 세이하는 사인 대부분이 뇌진탕과 머리 부분의 심한 자상, 그리고 좁은 공간에 인파가 몰려든 데 따른 질식이었다고 밝혔다.
알 아흘리 소속 축구선수 모하메드 아부 트리카는 “사람들이 죽어가도 아무런 대책이 없었다”며 “축구경기가 아니라 전쟁터였다”고 성토했다. 이집트 축구협회는 리그 경기를 무기한 중단했다.
검찰은 즉시 수사에 착수했고, 의회도 임시회의를 소집했다. 정부는 3일간의 추모기간을 선포했다고 BBC가 전했다.
이번 사건이 정치적 문제와는 관련이 없었지만, 현지 주민들 사이에서는 자제력을 상실한 대규모 군중에 대해 경찰이 치안을 확립할 통제력을 갖췄는지 우려가 나왔다. 이날 카이로의 내무장관 청사 앞에는 수백 명의 시위대가 모여 경찰의 무능함을 성토했다.
한편 제프 블래터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은 “축구계의 암흑의 날에 상상할 수도 없고 벌어져서는 안 됐던 비극적 상황이 발생했다”며 “매우 충격적이고 슬프다”고 말했다.
한승주 기자 sj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