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하게 태어난 사람들을 꿈으로 질주하게 만드는 힘은 어디서 시작되는 것일까

입력 2012-02-02 18:53


그들이 세상을 바꾸기 전 / 에드윈 키스터 주니어/황소자리

1955년 12월 1일 오후 6시쯤, 미국 몽고메리시 소재 페어백화점에서 재봉사로 일하던 로자 파크스(1913∼2005)는 클리블랜드 애비뉴에서 버스에 올랐다. 긴 시간 동안 일한 탓에 녹초가 된 그녀는 버스 내 유색인종 구역인 뒷자리에 앉았다. 버스는 시내를 지나면서 더 많은 승객을 태웠고 어느새 빈자리가 남아 있지 않았다. 한 버스정류장에서 백인 남자 몇몇이 탑승하자 버스운전사 제임스 블레이크가 뒷자리로 다가와 다그친다.

“너희들, 저리 비켜서 자리 좀 만들어봐.” 흑인 세 명은 자리를 내주었으나 파크스는 일어나지 않았다. “당장 일어나지 않으면 경찰을 부를 거야.” 블레이크의 엄포에도 불구, 당시 42세였던 파크스는 머리를 꼿꼿하게 세운 채 대꾸했다. “그러시든지요.” 훗날 그녀는 이렇게 회고했다. “마치 한겨울, 이불을 덮듯이 놀라운 확신이 내 온몸을 뒤덮는 것 같았다.”

경찰서로 연행된 파크스는 14달러의 벌금형을 언도받는다. 흑인들이 유색인종 구역의 자리를 차지할 권리가 법으로 보장돼 있었지만 그건 유명무실했다. 하지만 그녀는 물러서지 않고 인종차별법을 철폐시키는 대규모 인권운동에 불을 지폈다. 파크스는 공공시설 내 인종 분리정책의 적법성에 대한 소송을 준비하던 전국유색인종협회(NAAVP)가 애타게 찾던 인물이었다. “체포와 기소에 저항하는 뜻으로 버스를 이용하지 맙시다!” 수천 장의 전단이 흑인사회에 뿌려졌고 버스탑승거부운동은 들불처럼 번져갔다. 무려 381일 동안 지속된 운동을 벌인 결과 법원은 분리정책이 불법이라는 판결을 내린다. 이 사건 이후 파크스는 흑인인권운동의 대모로 거듭났다.

파크스의 예에서 보듯, 애당초 평범하게 태어난 사람들을 꿈과 이상으로 질주하게 만드는 힘은 어디서 시작되는 것일까. 미국의 역사 전문저술가인 저자는 역사를 뒤흔든 인물들이 어떤 계기로 사회변혁운동에 뛰어들었는지를 탐구한다.

대영제국의 식민지였던 호주 여성들에게 참정권을 보장받게 한 여성 운동가 에디스 코완(1861∼1932)도 그 가운데 한 명이다. 출산 도중 사망한 어머니 대신 새어머니 슬하에서 자랐던 코완은 호주 퍼스 지역의 유력인사인 케네스 브라운과 재혼한 새어머니가 부부싸움 끝에 브라운이 쏜 총에 맞아 사망한 뒤 기숙학교로 보내져 성장한다. 지독한 외로움과 싸우며 자신의 비극을 곱씹던 그녀는 우연히 독서클럽에 가입했다가 미국에서 온 강연자 에밀리 라이더 박사의 강연을 듣게 된다.

“모든 여성은 온갖 방법으로 자신을 최고로 발휘할 의무가 있다.” 코완은 이 연설을 들은 25명의 회원들이 주축으로 만든 카라카타클럽 사무국장으로 선출된다. 이후 그녀는 1916년 서호주 성공회 주교가 임명한 사회문제위원을 거쳐 1920년 치안판사가 된다. 당시는 여성의 의회 진출이 금지돼 있었지만 1921년 선거에서 그녀는 당당하게 서호주 의회 서퍼스 지역대표로 출마한다. 정치전문가들은 상대 후보의 승리를 예상했다. 하지만 결과는 코완의 승리였다. 호주의 첫 여성의원이 된 코완의 유년기는 비극적이었지만 그 비극에서 자신이 가야 될 길과 추구해야 할 목표를 발견했던 것이다.

베트남 출신의 젊은 주방 보조 응우옌 땃 따잉. 그는 수척해 보일 정도로 마르고 키가 작고 말이 없는 사내였다. 학자 출신 아버지의 권유로 일찌감치 프랑스 유학을 꿈꿔온 그는 17세에 호찌민에서 프랑스인 선장을 만나 요리사 보조로 고용된다. 선박의 주방바닥을 걸레질하고 채소를 다듬고 석탄을 퍼 나르는 밑바닥 생활을 하면서도 아프리카와 아시아, 그리고 미국으로 떠돌며 견문을 넓히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가 파리에서 요리사로 고용됐을 때 고객들은 그를 ‘몽마르트르의 벙어리’라고 불렀다. 그는 식당에서 일하면서도 프랑스어 실력을 갈고 닦으며 1919년 6월 제1차 세계대전에서 승전한 4개국 정상들의 베르사유 협정을 프랑스어로 이해할 수 있었다.

특히 미국 윌슨 대통령이 언급한 민족자결주의는 그의 가슴을 파고든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윌슨에게 전하기로 마음먹는다. “식민지 지배를 받아온 모든 사람들은 주권과 정의의 시대가 그들 앞에도 펼쳐질 것이라는 희망에 가득 차 있다”는 내용의 편지를 들고 그는 베르사유 궁으로 향한다. 인상이 좋지 않은 그는 경비병에게 저지당해 궁으로 들어가지 못했지만 편지만큼은 전할 수 있었다. 며칠 뒤 그의 편지 내용은 ‘뤼마니테’지에 실렸고 급진파들로 구성된 프랑스사회당은 그를 당 회의에 초대한다. 사회당원들은 그를 따뜻한 박수로 맞아주었다. 며칠 후 그는 아시아노동자들의 고통에 대해 사회당 내에서 가장 큰 목소리를 내는 사람으로 변신해 있었다. 인도차이나 반도의 독립을 이끈 호치민(1890∼1969)의 꿈은 주방 보조 시절에 영글고 있었던 것이다.

누구에게나 역사적 전환의 순간은 다가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순간을 어떻게 경험하는가에 따라 우리의 삶은 비범해지기도 하고 졸렬함으로 떨어지기도 한다. 이들 세 사람을 포함, 한니발에서 고르바초프에 이르는 22명의 전기는 인생 역전의 드라마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채인택 옮김.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