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현 화백 그림 100점 병원에… 老화가의 ‘재능 기부’

입력 2012-02-02 19:25


“딸을 시집보내는 마음이지만 환자들에게 희망과 위로가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쁩니다.”

공무원에서 화가로 제2의 인생을 살아온 황진현(83·사진) 화백이 서울아산병원에 작품 100점을 기증했다. 그림들은 3일 병원 동관 1층 갤러리에서 열리는 기증식이 끝난 뒤 10일까지 전시된다.

지난해 이 병원에서 척추협착증 수술을 받고 지금도 당뇨합병증으로 투병 중인 황 화백은 딱딱한 병상에서 치료를 받는 다른 환자들에게 자신의 재능을 나눠 주자는 생각으로 작품 기증을 결심했다.

“그림은 치유능력이 있어요. 보는 사람도, 그리는 사람도 그림을 통해 마음의 안정감을 갖게 되죠. 제 그림이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처럼 환자들에게 편안함과 안정감을 줄 수 있다면 그 가치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겁니다.”

황 화백은 중학교 시절부터 화가가 되고 싶었지만, 고교 2학년 때 갑자기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4남매 중 맏이인 그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1961년 경제기획원에 들어가면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바쁜 업무 중에서도 틈틈이 그림을 그렸다. 이후 74년 주미경제협력관으로 미국 뉴욕에 머무를 때 어려서부터 간직해온 미술에 대한 꿈을 실현시키기로 마음먹었다. 퇴근하면 곧장 미술학원인 ‘뉴욕 아트 스튜던트’에 들러 실기를 연마하면서 화가로서의 전문훈련을 받았다.

해외근무를 마치고 경제기획원 국장으로 복귀해 3년간 근무한 그는 80년대 초 직장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화가의 길로 나섰다. 오로지 작업에만 매달려 그동안 1000여점을 완성하고 20여 차례의 개인전도 가졌다. 2004년 서울 오금동에 ‘황진현 미술관’을 세워 어려운 작가들에게 전시공간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최근 일본에서 발행된 ‘미술명감’에 실리기도 한 그의 그림은 인간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애정을 담았다는 평가다. ‘바다풍경’ ‘농악’ ‘자갈치 시장’ 등 삶의 희로애락을 독특한 색채감각으로 표현하고 있다.

황 화백은 건강이 허락하는 한 작업을 계속 이어갈 계획이다. “저의 후반 인생을 무엇에 바칠 것인가 항상 골똘히 생각했어요.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뜨겁고 건강하게 사는 길이란 창작생활뿐인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묵묵히 이 길을 걸어갈 겁니다.”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