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사극 MBC ‘해를 품은 달’은 완전 허구?… 왕 이훤은 연산군 추정

입력 2012-02-02 18:35


MBC 수목드라마 ‘해를 품은 달(해품달)’의 인기가 고공행진 중이다. 시청률 조사기관인 AGB닐슨미디어리서치에 따르면 1일 방송된 ‘해품달’ 9회는 전국 기준 34.5%, 수도권 기준 38.9%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지난달 4일 전국 시청률 18.0%로 출발한 ‘해품달’은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며 방송 3회 만에 전국 시청률 20%, 6회 25%, 8회 30%의 고지를 넘어섰다.

총 20부작 가운데 중반인 이번 주 방송에서는 왕 이훤(김수현)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액받이 무녀로 입궐한 허연우(한가인)의 정체가 조금씩 드러나는 내용으로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해품달’의 성공 요인은 여진구 김유정 등 아역들의 열연과 애절한 로맨스, 개성 있는 판타지 사극이라는 점 등을 꼽을 수 있다. 성인 주연들은 처음엔 다소 어색했으나 갈수록 안정된 연기력을 보여주고 있다.

게다가 최근 방영된 사극의 장점만을 살려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꽃미남을 등장시켜 신분을 초월한 사랑 이야기를 펼친 ‘성균관 스캔들’, 수양대군 딸과 김종서 아들의 애틋한 로맨스를 그린 ‘공주의 남자’, 장면마다 빼어난 영상미를 자랑한 ‘뿌리 깊은 나무’ 등 명품 사극의 필수조건을 두루 갖추었다. 왕의 측근에 검술이 뛰어난 호위무사를 두고 있는 것은 ‘뿌리 깊은 나무’와 같다.

이들 드라마와 ‘해품달’의 차이점이라면 역사적인 고증이 필요 없는 완전한 허구로 상상력을 자극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하늘 아래 뚝 떨어지는 새로운 것은 없을 터이다. ‘해품달’에 등장하는 인물의 캐릭터나 관직 등을 통해 조선시대 특정 인물이나 사건 등을 유추해볼 수 있다. 조선왕조실록 등 문헌을 바탕으로 ‘해품달’의 역사적 사실 관계를 알아본다.

◇양명군은 누구=이훤의 형으로 나오는 양명군(정일우)은 정치에는 관심이 없고 풍류를 즐기며 사는 인물이다. 자유분방한 양명군의 성품은 1404년(태종 4) 10세 때 세자로 책봉됐으나 동생 충녕대군(훗날 세종)에게 세자 자리를 내주고 자연을 벗 삼아 평생을 유랑한 양녕대군과 비슷하다. 세종은 양녕대군에게 배려를 아끼지 않아 형제의 우의가 돈독했다. 드라마에서 이훤이 형을 항상 반갑고 따뜻하게 대하는 모습은 세종과 양녕대군의 관계를 떠올리게 한다.

◇대왕대비의 섭정=성조(안내상)가 죽은 후 세자 이훤이 어린 나이에 임금에 오르자 대왕대비(김영애)가 수렴청정을 한다. 실제로 조선왕조에서는 성종이 13세로 왕위에 올랐을 때 세조의 비 정희왕후(자성대비)가 수렴청정을 했다. 성종 이후에도 명종 12세, 선조 16세, 숙종 14세, 순조 11세, 헌종 7세 등 어린 나이에 즉위한 왕 대신 대비가 섭정을 했다. 권력욕에 사로잡힌 ‘해품달’의 대비는 성종의 계비이자 연산군의 어머니 윤씨를 폐비시키고 왕권을 장악한 인수대비와 흡사하다.

◇성수청은 실존기관=성수청(星宿廳)은 왕실의 안녕을 위해 굿을 하도록 국가에서 공식적으로 둔 기관이다. 성수청 무당을 국무(國巫)라고 한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성수청에 대한 기록이 10회가량 나온다. ‘성종실록’에 처음 등장하고 ‘연산군일기’를 거쳐 ‘중종실록’에는 이를 혁파하라는 상소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언급이 없다. ‘해품달’에서는 대비가 성수청의 국무(전미선)를 통해 연우를 죽이려 했다. 성수청이 존속했던 시기로 미루어 ‘해품달’의 연대를 짐작할 수 있다.

◇윤대형은 윤원형이 모델?=드라마에서 중전 윤보경(김민서)의 아버지이자 영의정인 윤대형(김응수)은 딸을 내세워 권력을 휘두르는 외척이다. 조선시대 외척의 전형적인 인물은 중종의 계비 문정왕후를 누이로 둔 윤원형이다. 그는 장경왕후의 소생인 세자(훗날 인조)를 폐위하고 문정왕후가 낳은 경원대군(훗날 명종)을 세자로 책봉하려는 모의를 꾸몄다. 결국 조카인 명종이 즉위하자 득세한 그는 반대세력을 몰아내고 영의정에까지 올랐다. ‘해품달’ 윤대형은 윤원형의 분신과 다름없다.

◇홍문관 대제학 관직=연우의 아버지 허영재(선우재덕)의 관직은 홍문관 대제학(정2품)이다. 홍문관은 세조에 의해 폐지된 집현전 대신 설립된 학술·언론기관이다. 1463년(세조 9) 문신 양성지의 건의에 따라 장서각(藏書閣)을 홍문관이라 했는데, 이때의 홍문관은 장서기관이었다. 홍문관이 사헌부 사간원과 더불어 3사(三司)의 기능을 제대로 한 것은 1478년(성종 9)부터였다. 따라서 홍문관이 등장하는 ‘해품달’의 시기는 적어도 성종 이후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런 역사적 사실 관계로 보아 ‘해품달’은 사랑과 이별, 음모와 배신, 권력 싸움 등으로 점철된 조선왕조 500년사 중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부분만 발췌, 가상의 인물을 내세워 짜깁기한 측면이 있다. 그렇다면 이훤은 어떤 왕으로 추정할 수 있을까. 드라마 속 여러 정황으로 미뤄 성종 연산군 중종 가운데 한 명, 특히 가장 극적인 삶을 산 연산군에 초점이 맞춰진다. 하지만 이것도 상상일 뿐이다. 드라마는 어디까지나 허구이기에.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