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염성덕] 참된 교육자의 길

입력 2012-02-02 18:23


50대 초반의 장년 남자들이 하나둘씩 식당으로 들어온다. 열대여섯 명쯤 모였을 때 고령의 노신사가 들어오신다. 장년들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정중하게 노신사를 맞는다. 노신사가 식탁 가운데 자리에 좌정하자 장년들이 큰절을 올린다. 노신사는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 장년들을 훑어본다. 늦게 도착한 장년들도 노신사에게 큰절을 올린다. 당연히 주변에서는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본다. 장년들의 생김새와 옷차림을 봐서는 조직폭력배 같지 않은데 하는 짓이 조폭처럼 보일 테니 말이다.

제자들 존경 한 몸에 받아야

하지만 조폭 모임은 아니다. 1979년 2월 춘천고 3학년 3반을 졸업한 반창회 자리다. 노신사는 담임인 이봉구 수학 선생님. 당시 춘천고는 고입시험을 통해 학생을 뽑았고, 3반은 하나뿐인 문과 우수반이었다. 그러니 강원도 인재를 모아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선생님은 반 학생을 죄다 명문대에 보내려고 혼신의 힘을 다한 분으로 기억된다.

반창회가 끝나면 작은 선물을 드린 적도 있다. 그야말로 촌지(寸志)요, 미성(微誠)이다. 그리곤 변호사인 제자가 기사를 시켜 승용차로 이 선생님을 집까지 모셔다 드린다. 이 선생님이 은퇴한 동료들에게 제자들의 섬기는 자세를 자랑하면 모두 부러워하신다고 한다.

기억에 남는 선생님이 한 분 더 계신다. 영어를 가르친 현동헌 선생님이셨다. 현 선생님은 수업 방식이 약간 독특했다. 어려운 영어문제를 내놓고 못 맞춘 학생들에게 가끔 얼차려를 시켰다. 틀린 학생은 열외 없이 교실 뒤로 가서 팔굽혀펴기를 10회 정도 했다. 수업 내내 급우들이 들락날락하며 얼차려를 받았다. 당연히 수업 분위기는 차분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난이도가 높은 그 문제는 확실히 정복할 수 있었다.

두 선생님은 이따금 경기고 시험문제는 물론 일본 유수 대학의 입학시험 문제를 가지고 수업을 하셨다. 최고 실력을 자랑하는 선생님들로부터 배웠기 때문에 고액 과외나 학원을 다니지 않고도 두루 명문대에 합격했다. 특히 가난하지만 명문대 진학을 꿈꾸는 학생들에게는 더 없이 좋은 선생님들이셨다.

곽노현, 사퇴가 최소한의 도리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은 교육행정가이기에 앞서 교육자다. 그는 서울시교육감 선거에서 당선되기 전 19년간 한국방송통신대 법학과 교수를 지냈다. 교육자는 그 어느 직종과 직역보다 높은 도덕성, 청렴성, 성실성, 정치적 중립성 등을 갖춰야 한다. 교육자가 제자와 학부형은 물론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력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곽 교육감은 후보 매수 혐의로 구속기소돼 1심에서 당선무효형인 벌금 3000만원을 선고받은 순간 교육감 자리를 내놓았어야 했다. 그것이 법을 어긴 교육자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양심이고, 진보나 좌파 세력의 피해를 줄이는 방법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출근하자마자 체벌금지와 두발·복장·집회 자유 등을 허용해 논란이 일고 있는 학생인권조례를 밀어붙였다.

심지어 곽 교육감은 1일 열린 월례조회에서 “저는 (재판) 과정에서 정직과 진실로 임했다. 그 결과 검찰 공소사실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바닷가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렸다”고 말했다.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기 전까지 무죄추정의 원칙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1심 선고에서 드러난 그의 혐의는 너무 명백하다. 1심 선고 내용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궤변이 아닐 수 없다.

교육자는 제자들로부터 존경을 받아야 한다. 특히 자기 분야에서 소신껏 일하는 제자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을 때 보람은 더욱 커질 터이다. 곽 교육감은 제자들의 존경을 받기 힘든 길로 들어섰다. 존경은커녕 질타라도 덜 받으려면 즉각 사퇴해야 한다.

염성덕 논설위원 sdyu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