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정의 바둑이야기] 바둑을 읽다
입력 2012-02-01 18:07
최근 자서전과 에세이집 출판이 활발한 가운데 바둑계에도 다양한 책들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소개했던 이창호 9단의 ‘부득탐승’은 이창호의 지금까지 삶을 조명하고 바둑과 인생, 승부를 기록해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리고 올 1월에는 이세돌 9단의 자서전 ‘판을 엎어라’가 출간됐다.
조용하고 차분한 이창호와 달리 거침없고 솔직한 성격으로 많은 구설수에 올랐던 이세돌. 이제 서른이 된 세계 최강 이세돌의 또 다른 모습을 이 자서전에서 만나볼 수 있다. 1995년 어린 나이에 프로에 입문에 세계 최강이 되기까지 모양에 구애받지 않고 실전적인 수로 치열한 바둑을 즐겨두는 그의 바둑만큼이나 변화무쌍하고 거침없었던 삶에서 인간 이세돌을 엿본다.
이세돌은 자서전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세돌답지 않은 기보는 남기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23개월째 국내랭킹 1위, 휴직과 복직 후 32연승의 신화, 세계대회 15회 우승 등 아직은 어린 나이지만 화려한 경력을 가진 그는 한 아이의 아버지이자 한 집안의 가장으로 한국바둑계의 중심에 서 있다. 이 자서전을 통해 많은 바둑팬이 이세돌을 좀 더 이해하고 응원해 이세돌이 앞으로도 그다운 기록들을 남겨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국바둑계의 간판스타라면 단연 이창호와 이세돌이겠지만 한국 여자바둑계의 간판스타로는 조혜연 9단을 빼놓을 수 없다. 1985년생으로 그동안 루이나이웨이 9단, 박지은 9단과 함께 여자바둑계의 트로이카로 불렸다. 하지만 우승 3번, 준우승 14번의 기록이 말해주듯 조혜연은 매번 결승무대에서 루이 9단에게 발목을 잡혔다. 이런 승부에 대한 아쉬움의 표현인지 얼마 전 루이가 13년 가까운 한국기사 생활을 접고 중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계기로 첫 수필집 ‘캠퍼스를 걷다’를 펴냈다.
조혜연은 루이와의 송별회에서 “수없이 결승전에서 패해 석별의 마음보다는 아픈 기억이 더 많다. 앞으로 중국에서 배울 기회가 빨리 왔으면 좋겠다”는 솔직한 심정을 토로하기도 했는데, 이번 수필집에는 루이와의 일화가 많이 담겨 있다. 또한 오로지 바둑의 길을 걷던 승부사에서 평범한 대학생이 돼 캠퍼스를 누볐던 기억 등 프로기사의 모습이 아닌 소소한 여학생의 감성도 보여주고 있다.
서점 바둑코너에 즐비한 바둑의 기술을 알리는 책보다 아직까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기사들의 삶이 그려진 책들이 반갑게 느껴진다. 이제는 조금 더 대중에게 친숙하게 다가가고, 바둑 그리고 바둑으로 삶을 그려가는 ‘승부사’들의 모습을 솔직하게 보여주는 것이 바둑으로 소통할 수 있는 첫걸음일 것이다.
<프로 2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