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등 켜진 한국경제] 내수 침체에 수출도 허덕… ‘무역한국’ 내우외환
입력 2012-02-01 18:36
한국경제가 내우외환에 시달리고 있다. 미래 경기환경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내수가 좀처럼 살아나지 않는 상황에서 우리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하던 수출마저 유럽 위기의 여파로 제동이 걸렸다. 수출과 내수의 쌍끌이 부진이 본격화하는 모양새다.
◇EU위기 직격탄 맞은 한국 수출=지식경제부가 1일 밝힌 지난달 수출입실적을 보면 유럽재정위기와 유가상승의 파고에 휘청이는 한국수출의 현실을 실감할 수 있다.
주요국 재정악화로 소비심리가 위축된 EU에 대한 수출이 지난해 1월보다 45% 가까이 급감했다. 지난해 온갖 장밋빛 전망을 내세우며 체결됐던 한·EU 자유무역협정(FTA) 효과가 무색한 상황이다.
그렇다고 EU 외의 다른 지역 및 국가들에 대한 수출이 활기를 보이지도 않았다. 1월 1∼20일 수출증가 현황을 보면 중국이 7.3%, 미국이 23.3%를 기록했지만 이는 지난해 12월 같은 기간(중국 24.2%, 미국 35.6%)에 비해 증가세가 큰 폭으로 꺾인 것이다. EU위기가 전 세계 수출지역에 영향을 미쳤음을 보여준다.
수출품목의 동반부진도 우려스럽다. 석유제품(39.5%)만이 두자릿 수 증가세를 기록했을 뿐 무선통신기기(-39.7%), 선박(-41.5%), 반도체(-8.5%) 등 주력수출제품들이 크게 뒷걸음질 쳤다.
지식경제부 관계자는 “매년 1월은 연말효과 상쇄로 수출물량이 감소하는 경향을 보여왔다”며 지난달 수출부진이 계절적 요인에 기인했음을 내비쳤다. 하지만 지난달 수입증가율도 지난 1년간 처음으로 한자릿수(3.6%)로 추락하는 등 글로벌 금융 및 재정위기에 따른 불황형 무역구조가 엿보여 수출환경이 일시적으로 악화된 것으로 해석할 수 없다는 분석이 많다.
꿈틀거리는 유가도 ‘무역 한국호’의 골칫거리다. 세계적인 경기 침체로 인해 유가가 안정될 것이라는 기존의 전망과 달리 국제사회의 이란 추가제재 움직임으로 유가수준은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지식경제부에 따르면 원유도입물량은 지난달 7990만 배럴로 지난해 1월(8430만 배럴)보다 감소했지만 수입액은 배럴당 112.8달러로 1년 전(91.0달러)보다 20달러 이상 커지면서 도입액을 늘리는 효과를 가져왔다.
이로 인해 벌써부터 올해 무역흑자 250억 달러 달성 목표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타나고 있다.
◇제조업 경기 악화일로=제조업 경기는 일찌감치 삐걱댔다. HSBC는 1일 한국의 제조업 경기가 6개월째 나빠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달 기업구매담당 임원을 대상으로 조사한 한국 구매관리자지수(PMI)는 49.2를 기록해 지난해 8월 이후 기준점인 50을 계속 밑돌았다.
앞서 제조업 현황을 보여주는 광공업생산지수 추이를 보면 전월대비 3개월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내년 1월 업황전망 실사지수(BSI)는 12월 전망치(83)보다 4포인트 떨어진 79로 2년5개월 만에 최저치로 나타났다. 업체들의 체감경기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로널드 만 HSBC 아시아 담당 이코노미스트는 “한국 경기가 약세를 이어가 정책 당국은 경기를 부양하고 경기 하락을 완충할 수 있는 정책을 입안해야 하는 부담이 커지게 됐다”고 말했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유럽의 채권 만기가 2∼4월에 집중적으로 몰리는 등 글로벌 불안 요인이 분명히 있어 경기회복은 쉽지 않을 것”이라며 “이에 따른 국내 소비심리가 약화되면서 수출 내수 부진의 악순환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고세욱 기자 swk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