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송세영] 방통위원장이라는 자리

입력 2012-02-01 18:20


방송통신위원장 후임을 놓고 몇몇 후보들에 대한 하마평이 나오고 있다. 하마평이란 게 원래 자가발전도 섞여 있고 호사가들에 의해 본의 아니게 거론되는 경우도 있어서 100% 신뢰를 두긴 힘들다. 하지만 ‘깜짝 인사’를 기피하는 현 정부의 스타일로 볼 때 청와대가 염두에 두고 있는 인물들도 함께 거론되고 있을 것이다.

문제는 어떤 후보가 방통위의 제자리 찾기 같은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느냐는 점이다. 그에 앞서 새 방통위원장이 되기 위해서는 정치적 중립성과 전문성이라는 최소한의 조건을 갖추어야 하는 건 말할 필요도 없다.

현 정부의 방송정책은 이미 오래전에 참담한 실패로 결론 났다. 공영방송이 정치적 중립성을 잃고 ‘정권의 나팔수’로 전락했다는 비판도 야당이나 시민단체의 정치공세로 치부하고 넘어갈 수준을 넘어섰다. 무더기 종편 허용으로 미디어업계는 공황상태에 빠졌다. 부실 프로그램으로 방송의 질은 저하됐고 광고시장 왜곡으로 기업들의 고통은 커졌다. 전통적 미디어들은 경영난에 직면해있다.

이로 인해 언론 자유의 대전제 중 하나인 언론의 다양성은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 1980년 신군부에 의한 언론사 강제통폐합에 맞먹는 언론 유린 행위라는 극단적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통신 쪽도 심각하다. 방송과 통신 융합으로 경쟁력을 강화한다며 정보통신부를 해체해 통신 정책 기능을 빼앗아가더니 이제는 방통위 자체가 통신업계 경쟁력 강화의 최대 걸림돌이라는 비아냥까지 받고 있다.

2009년 11월 애플 아이폰의 국내 출시로 통신시장은 격변기로 접어들었지만 방통위는 어디에도 없었다. 영국의 경제분석기관 EIU가 발표한 IT산업 경쟁력 순위에서 한국은 2007년 세계 3위까지 올랐지만 방통위가 등장한 2008년에는 8위, 2011년에는 19위까지 추락했다.

최시중 전 방통위원장은 비리의혹이 없었어도 정책 실패와 파행에 대한 책임을 지고 진작에 물러나는 게 옳았다. 자질도 능력도 없이 4년 가까이 버텨온 최씨의 잘못도 크지만 오로지 대통령선거의 일등 공신이라는 이유로 전문성도 정치적 중립성도 기대하기 힘든 인물을 선임해 무턱대고 밀어준 이명박 대통령의 책임도 작지 않다. 이 대통령은 따라서 후임 인사를 통해 최소한 지금까지의 과오를 더 이상 확대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보여야 한다.

방통위의 파행은 현직 대통령의 ‘형님의 친구’이자 대선 승리의 1등 공신인 최시중씨를 위원장으로 선임했을 때부터 예고됐다. 그런 만큼 대통령이나 소위 ‘실세’들과 지연이나 학연으로 얽혀있는 인물은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다 해도 배제해야 한다. 정치인 출신도 당연히 부적절하다. 올해 두 차례 큰 선거가 예고돼 있는 만큼 절대적으로 피해야 할 선택이다.

새 방통위원장에게는 정치적 독립성과 전문성 외에 몇가지 자격요건이 더 필요하다. 귀를 열어 겸허하게 반대의견을 청취하고 사회적 합의를 존중하는 자세를 갖춰야 한다. 비판과 반대를 묵살하고 불도저식으로 밀어붙이는 인물은 방송통신 정책을 더 큰 재앙으로 몰고 갈 우려가 크다.

대통령부터 귀를 열고 야당이나 시민단체, 관련 학계 및 업계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야 한다. 정치적 반대자들도 비토할 수 없는 중립적 인물이라야 잘못된 방송통신 정책을 바로잡고 방통위의 제 위상을 정립할 수 있다. 새 방통위원장은 무엇보다 방송통신 정책 파행의 2차 촉매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송세영 사회부 차장 sysoh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