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안태정] 지키니까 아름답다
입력 2012-01-31 18:30
오랜만에 영화관에 갔더니 재미난 장면이 스크린에 비쳤다. ‘앞좌석은 발로 차지마세요. 핸드폰은 진동으로 해주세요. 쓰레기는 휴지통에 버려주세요’라는 메시지의 영상이었다. 본 영화를 상영하기 전에 극장 에티켓을 알리는 동영상이 유쾌하고 깜찍해서 눈길을 끌었다. 실제로 한 여론조사기관이 설문조사에서 “극장에서 가장 예의 없는 행동은 무엇인가”라고 물었더니 “뒤에서 좌석을 발로 차는 것”이 49%로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
학교나 가정에서 당연시되던 ‘사랑의 매’가 옛말이 됐듯이 시대에 따라 소통 방법도 바뀌고 있는 것 같다. 예전에는 강력하고 직설적으로 지시하는 듯한 문구가 대부분이었다면 이제는 같은 내용이라도 귀여운 캐릭터의 앙증맞은 움직임으로 설득한다. 극장안에서 주변을 둘러보니 관객들 역시 영상에 담긴 메시지를 저항 없이 웃으면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독일의 문호 괴테는 “인간의 행실은 각자가 자기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거울”이라고 말했다. 이 말을 요즘 말로 해석하면 대중이 함께하는 공간에서 남을 불편하게 한 행동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이야기다.
공공질서가 무너지는 대표적 현장은 식당이다. 뛰어다니거나 소리를 지르고, 심지어 남의 식탁을 기웃거리는 등 난감한 상황을 연출하는 아이들을 보면 혼이 빠져나가는 듯하다. 그럴 땐 나는 아이들을 적절히 컨트롤하지 않고 방치하는 부모에게 더 눈총을 쏜다. 아무리 귀여운 자식이라도 다중이 이용하는 공공장소에서 소란을 피우는 것은 아이들의 특권도, 재롱도 아니다.
내가 근무하는 서울역 주변도 가끔 무법지대로 변한다. 수많은 시민들에게 개방된 광장을 특정 세력이 안방 쓰듯 독차지하는 것이다. 합법적인 절차를 거쳐 집회허가를 받은 경우도 실망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사용하다가 해가 떨어져 주변이 어두우면 뒤처리를 생략한 채 내빼는 것이다. 아침 출근 때 광장에서 이리저리 나뒹구는 휴지 더미를 본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예의는 남과 화목함을 으뜸으로 삼는다’라는 논어의 말은 배려를 바탕으로 예의를 지키고 행실을 바로 해야 화목함을 얻을 수 있다는 의미일 테다. 길거리를 그냥 스쳐 지나가는 사람일지라도 상대방에 대한 예의가 엿보이면 절로 고개가 숙여지고 인사를 하게 된다. 사나운 눈총보다 부드러운 눈길이 많은 사회가 행복지수가 높을 것은 자명한 이치다.
이런 생각을 하다가 본 영화가 시작되고 조금 지나자 내 좌석이 흔들렸다. 뒤에 앉은 사람이 내 의자를 건드린 것이다. 좌석 간격과 다리 길이의 비율이 맞지 않아 일어난 일이겠으나 분명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에티켓 동영상을 보았을텐데. 내 의자를 자꾸 건드리는 그대는 누구인가.
안태정 문화역서울284 홍보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