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복서 따온 바지·양손 자유롭게 한 숄더백… 여성 해방시킨 패션의 진화
입력 2012-01-31 18:09
스커트의 지퍼, 바지 정장, 팬티스타킹…. 너무나 일상화된 여성들의 패션이지만 그 역사는 100년이 채 되지 않는다. 치마저고리를 입었던 우리들의 의복사에 견준 얘기가 아니다. 서양에서도 19세기에는 숨 막히는 코르셋으로 온몸을 조인 뒤 질질 끌리는 드레스를 입었다.
영국 센트럴 마틴스 디자인미술학교 해리엇 워슬리 교수는 “20세기는 변혁의 시대로 여성패션도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면서 1900년에서 2010년까지 ‘패션을 뒤바꾼 아이디어 100가지’(시드페이퍼 출판)를 꼽았다. 지퍼 같은 전혀 새로운 발명품도 있지만 바지 등 남성의류에서 차용된 것들도 적지 않다. 여성들의 일상을 편하고 멋스럽게 만들어준 패션 아이디어 10가지를 추려봤다.
①지퍼=100여 년 전에는 아침마다 옷을 입기 위해선 갈고리와 후크 리본 단추 등을 채우고 매기 위해 난리법석을 떨었다. 이런 번거로움을 해결해준 지퍼가 발명된 것은 1913년. 스웨덴계 미국인 엔지니어 기드온 선드백이 만들어냈다. 패션에 본격 도입된 것은 1930년대에 이르러서다.
②백=메이크업 제품이나 손수건 등을 넣어 들 수 있는 클러치 백이 등장한 것은 1910년대다. 그 이전 사교계 여성들의 모든 짐은 남자나 하녀들이 들었기 때문. 백의 등장은 여성들이 독립적이 됐다는 신호이기도 한 셈. 양손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숄더백이 등장한 것은 1930년대. 고가의 명품백이 등장한 것은 1990년대. 2000년대 핸드백은 가장 잘 팔리는 패션 아이템이 됐다.
③여성을 위한 바지=19세기까지 여성들은 바지를 입지 않았다. 독일 출신 미국 여배우 마를레네 디트리히가 1930∼40년대 프랑스에서 바지를 입고 거리를 활보했다는 이유로 파리경찰서장은 그녀에게 파리를 떠나라고 명령했을 정도다. 1960년대가 되어서야 비로소 여성들은 바지를 평상복으로 입을 수 있게 됐다.
④합성섬유=한때 나일론은 사치의 상징이었다. 1938년 발명된 나일론은 놀라운 강도와 탄력으로 속옷 스타킹에 사용됐다. 물자가 귀했던 제2차 세계대전 때 여성들은 나일론 스타킹을 신는 것이 꿈이었다. 이후 아크릴, 폴리에스테르와 스판덱스 등 합성섬유가 잇따라 발명됐다. 신축성이 뛰어나 구겨지지 않고, 세탁을 해도 색이 바래지 않는 합성섬유는 가격까지 저렴해 여성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다. 최근에는 자외선으로부터 몸을 보호해주고, 보습효과까지 주는 기능성섬유로 발전하고 있다.
⑤샤넬№5=19세기 화학의 발전으로 향수 제조사들은 인공성분을 향수에 넣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희귀하고 비싼 천연향이 우세했다. 코코 샤넬이 1921년 선보인 샤넬№5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완전한 인공향으로 제조된 이 향수는 향수업계 판도를 바꿔놨으며, 지금까지도 베스트셀러로 꼽히고 있다.
⑥티셔츠=20세기 초만 해도 티셔츠는 미군들의 속옷이었다. 1951년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서 말런 브랜도가 티셔츠를 입고 등장해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1960년대 들어서야 여성들도 입기 시작했으며, 1970년대 남녀 모두 사랑하는 유니섹스 유니폼으로 자리 잡았다.
⑦스틸레토=여성들의 각선미를 완성시켜주는 대신 허리와 발목 건강에는 치명적인 킬힐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1950년대 중반 탄생한 스틸레토 힐 덕분이다. 그 이전에도 하이힐이 있었지만 그 굽은 두껍고 튼튼한 나무굽이었다. 나무굽으로 15㎝나 되는 킬힐을 유지하기는 어렵다. 이탈리어로 ‘작은 단검’을 뜻하는 스틸레토 힐은 금속으로 중심축을 만들었다. 살바토레 페라가모와 로저 비비에가 각자 원조라고 주장하고 있다.
⑧청바지와 운동화=청바지는 1870년대 광부들을 위해 태어난 옷이었다. 이후 벌목공, 농부 카우보이 등이 작업복으로 애용했다. 1800년대 후반 등장한 운동화는 이름 그대로 운동할 때 신는 신이었다. 이 두 가지가 캐주얼웨어로 등장한 것은 1950년대로, 영화 덕분이었다. ‘이유없는 반항’(55년)에서 제임스 딘이 청바지에 흰색 스니커즈를 신고 등장한 이후 청바지와 운동화는 미국의 반항적인 10대 청소년들의 사랑을 받게 됐다.
⑨타이츠=각선미를 돋보이게 해주고, 웬만한 추위는 거뜬히 막아주는 타이츠와 팬티스타킹이 등장한 것은 1960년대다. 63년 겨울 여성들은 얇은 나일론 스타킹과 이를 고정해주는 가터벨트를 버리고 타이츠와 팬티스타킹으로 멋을 냈다. 가터벨트가 필요 없게 되면서 스커트는 점점 더 짧아져 69년에는 마이크로 미니까지 등장했다.
⑩과학기술을 입다=1970년대 후반 컴퓨터 기술을 받아들인 패션계는 이후 원단 디자인에서부터 모든 생산공정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에 활용하고 있다. 또 인터넷 발달은 패션에 대한 일반의 관심을 증폭시켰다. 최근에는 의류에 컴퓨터 전화기 등이 내장된 옷들이 등장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큐트서킷은 터치를 하면 색상과 패턴이 바뀌는 스커트를 내놓았고, 후세인 살라얀은 리모컨으로 형태와 구조를 바꾸는 옷을 패션쇼에서 선보이기도 했다.
김혜림 선임기자 ms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