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 ‘대체서식지’ 주먹구구… 인허가 후엔 나몰라라
입력 2012-01-31 18:03
우리나라에서 보전가치가 높은 산림 가운데 매년 62㎢, 즉 전체 산림의 0.1%가 사라진다. 갯벌은 더 심각하다. 보전가치가 높은 갯벌 38.4㎢, 전체 갯벌의 1.4%가 매년 없어진다. 이런 개발사업으로 10만종으로 추정되는 국내 생물종 가운데 매년 500여종이 절멸된다. 선진국에서는 생태계 훼손에 대해 개발사업자에게 다양한 형태의 보상을 하도록 하는 생물다양성 상쇄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대체서식지 조성은 그중 하나일 뿐이다. 아직 초보단계인 국내 대체서식지 조성 실태와 발전방안을 살펴본다.
◇원흥이 방죽 두꺼비 서식지 보전사례=충북 청주의 새 주거지 산남3지구는 ‘사람과 두꺼비가 함께 사는 생태마을’이다. 2003년 이곳에 아파트단지가 개발되자마자 청주의 한 환경운동단체가 택지개발지구 중심부에 있는 원흥이 방죽과 이곳의 두꺼비 집단서식 사실을 알렸다. 지금은 주민 2만여명이 사는 대단위 아파트단지가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던 생태마을로 태어나게 된 계기다.
2003년 5월 산란을 마친 두꺼비 집단이 인근 구룡산으로 이동하는 것이 관찰됐다. 환경단체와 주민 조직 등 40여곳이 ‘원흥이 두꺼비마을 생태문화보전 시민대책위원회’를 꾸렸고, 시민 5만여명은 두꺼비 서식지 보존 촉구 서명을 했다. 그러나 사업 주체인 당시 한국토지공사는 꿈쩍하지 않고 공사를 강행했다. 시민들은 인간 띠 잇기 등으로 두꺼비 서식지 훼손을 막았다. 2004년 11월 토공과 환경단체는 두꺼비 생태이동통로 확보와 생태공원 조성 등을 담은 상생의 합의에 이르렀다. 합의에 따라 대체습지(4곳), 생태통로(4곳), 생태교량(3곳) 등이 들어섰고, 생태공원이 2007년 완공됐다.
원흥이 방죽과 인근 구룡산을 잇는 생태계도 함께 살아났다는 평가가 잇따랐다. 최근에는 황조롱이, 원앙 등 천연기념물과 흰뺨검둥오리, 논병아리 등 조류 20여종이 찾는 것으로 확인됐다. 북방산개구리 등 양서류와 능구렁이, 유혈목이, 무자치 등 파충류도 나타나고 있다. 산남3지구는 환경부 선정 ‘자연생태복원 우수마을’, 국토해양부 지정 ‘살고 싶은 도시’로 선정됐다.
◇뒷 이야기, 불편한 진실=그러나 이후 원흥이 방죽과 그 주변에 생태공원을 조성한 좋은 의도에도 불구하고 사후관리 등에서 많은 문제점이 드러났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이 최근 펴낸 보고서 ‘대체서식지 조성 가이드라인 마련을 위한 연구’에 따르면 산남3지구 생태공원 조성계획에서 최우선 목표로 제시됐던 ‘안전한 서식공간 확보’와 ‘자생력 있는 생태계’ 유지는 실시설계에서 없어졌다. 대신 생태교육적 측면과 주민 휴식공간 조성이 주요 기능으로 부각됐다. 상세설계에서는 “풍부하고 쾌적한 녹지 확보”라는 도심 녹지공원 기능과 “주변 토지이용계획을 고려한다”는 조성방향이 반영됐다.
지역환경단체와 학술용역팀이 두꺼비 개체 수 모니터링을 실시한 결과 산란이동 개체는 2005년 약 400마리였지만 생태공원 공사가 시작된 2006년에는 264마리, 완공된 2007년 357마리로 증가했다가 2008년 167마리로 감소했다. 산란을 마친 뒤 봄철 춘면을 위한 이동 개체는 2006년 253마리를 정점으로 2007년 110마리, 2008년 26마리로 급감했다.
보고서의 연구책임자 노백호 KEI 연구위원은 “사업자들이 환경영향평가 협의를 받기 위해 법정 보호종의 대체서식지를 일단 만들어 놓고 인허가만 따내면 사후관리는 나 몰라라 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서식지 기능을 지속하려면 먹이자원, 피난처와 잠자리, 충분한 이동통로 등을 확보해야 한다. 노 위원은 “청주 원흥이 방죽 생태공원도 자치단체장이 바뀐 뒤 두꺼비가 아닌 지역주민을 위한 시설로 변질됐다”고 말했다.
◇광명시의 금개구리 대체서식지 조성과 문제점=경기도 광명시 하안1동 안터생태공원은 멸종위기종인 금개구리의 보전을 위해 마련된 대체서식지다. 광명시, 대한주택공사 등 행정기관이 협력해 멸종위기종의 원형서식지 일부를 복원한 생태공원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모범사례라고 할 만하다.
안터생태공원은 구름산과 도덕산의 허리에 해당돼 두 산의 산림생태계와 공원의 습지생태계를 연결한다. 금개구리 서식지는 광명시 도심 한가운데 자리 잡은 데다 사유지였다. 오래전 농업용 저수지로 조성된 인공습지였다. 토지 소유주는 개발이익을 기대하고 의도적 경작을 통해 서식지를 파괴했다. 광명시는 생태계보전협력금과 시 예산을 들여 사유지 일부를 사들였다.
그러나 KEI 보고서에 따르면 안터생태공원 역시 설계방향을 금개구리 서식지 보존에서 이용객 편의 쪽으로 변경했다. 모니터링 결과 2011년 현재 금개구리는 30마리 정도에 머물렀고, 점차 감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대신 다른 생물종의 개체 수가 늘고 있다.
금개구리 개체 수 감소의 원인으로는 낚시꾼에 의한 가물치 방사가 손꼽힌다. 국립공원연구원 송재영 박사는 “안터생태공원의 경우 당초 금개구리 서식지보다 습지 면적이 줄어든 데다 천적인 가물치를 꾸준히 제거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송 박사는 “우선 고유 서식지를 충분히 보전하고 불가피할 경우 대체서식지를 만들되 해당 종의 생태적 특성과 이동경로 등을 감안해서 잘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노 박사는 “안터생태공원 주변지역에 개발사업이 많이 진척되다 보니 사람들의 출입이 잦아졌다”면서 “그러다 보니 사후관리가 조경이나 친수공간 차원에서 주로 이뤄져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라고 말했다.
광명시는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금개구리의 생태특성 연구나 서식환경 개선이 시급한데도 1∼2등급 용출수의 수질관리에 매달려 있다. 금개구리 서식지는 근린공원으로 분류돼 녹색환경과가 아닌 공원녹지과에서 관리한다.
노 박사는 “우리나라는 대체서식지 조성과 관리를 토목회사나 조경업체에 그냥 맡기지만 일본의 경우 지역주민, 전문가 및 환경단체들이 모두 참여하는 협의체에게 맡긴다는 점도 큰 차이”라고 말했다.
임항 환경전문기자 hngl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