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 웨딩’ 어렵지 않아요… 재활용에 초점 맞춘 배재훈·김재화씨의 결혼식 준비
입력 2012-01-31 21:38
‘오랜 기다림 속에서 저희 두 사람, 한마음 되어 참된 사랑의 결실을 맺게 되었습니다. 오셔서 축복해 주시면 큰 기쁨이겠습니다.’
결혼식이 일주일 남짓 남았다는 신랑 신부의 얼굴은 화사했다. 지난 27일 서울 수유동 이후갤러리에서 기자와 만난 그들은 보물단지를 넘겨주듯 조심스럽게 청첩장을 내밀었다. 청첩장에는 청홍 색실로 만든 하트 안에 ‘배재훈 김재화’ 신랑 신부 이름과 ‘2012. 2. 4.’ 결혼식 날짜가 수 놓여 있었다.
예비신부 김재화(33)씨는 “재생종이라서 색이 하얗지 않다”면서 갤러리 한쪽을 가리켰다. 청바지 원단과 레이스로 깃이 장식된 남성재킷과 역시 청바지 원단과 흰색 시폰으로 만든 이브닝드레스가 철제 토루소에 입혀져 있었다.
김씨는 “웨딩촬영을 한 옷들인데 우리가 입던 옷을 고종사촌 동생들이 재활용해 만들어줬다”고 자랑했다. 이들의 결혼 콘셉트는 이른바 재활용을 주제로 한 ‘에코 웨딩’. 김씨는 얼마 전 이 갤러리에서 열린 환경운동가 윤호섭 교수의 특강을 듣고 에코 웨딩을 결심했고, 고종사촌 동생들의 도움으로 차근차근 결혼 준비를 하고 있다고 했다.
김씨의 고종사촌 동생이자 이후갤러리 관장인 정민기(27)씨는 “친가 외가 사촌이 모두 14명인데 제일 처음 결혼하는 누나가 의미 있는 결혼식을 하겠다고 해서 기꺼이 힘을 보태고 있다”고 말했다. 정씨는 “재활용을 원칙으로 두 사람이 하나가 된다는 의미를 살리기 위해 신랑이 입던 청바지와 재킷, 신부가 대학 때 입던 무용복을 한데 섞어 제작했다”고 설명했다.
예비신랑 배재훈(34)씨는 “처음 봤을 땐 좀 어설펐는데 입어보니 맞춤복의 매력이 느껴지더라”면서 특히 신부의 이브닝드레스는 훌륭하다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김씨도 “재훈씨가 입던 청바지여서 그런지 포근히 안긴 기분이 들었다”며 “신혼여행 가서도 입을 계획이지만 정작 결혼식 때는 입지 못한다”고 아쉬워했다. 결혼식 때 신부가 돋보였으면 하는 양가 어른들이 웨딩드레스를 강권해 따르기로 했단다.
정 관장은 “손재주와 눈썰미가 어느 정도만 있다면 입던 옷을 리폼해 입을 수 있을 것”이라면서 실제 웨딩촬영 때 입은 다른 옷들은 집에서 갖고 온 옷들이라고 소개했다.
웨딩촬영은 정 관장의 동생 희기(26)씨가 맡았다. 새내기 사진작가인 희기씨는 갤러리 뒤뜰에서 소품들을 활용해 기존 웨딩촬영과는 완전히 다른 ‘작품’을 만들어냈다. 김씨의 웨딩앨범에는 엄마의 한복을 입고 연출한 1940년대 복고 결혼식, 추운 겨울이라는 시간적 배경을 활용한 모스크바 결혼식, 세계적인 여류 화가 프리다 칼로 스타일의 결혼식 등 다양한 주제의 사진들이 담겨 있다.
김씨는 “같은 날 결혼하는 친구에게 웨딩촬영 얘기를 들었는데, 정말 붕어빵 찍어내기 같더라”면서 독특한 웨딩 사진을 갖게 돼 매우 뿌듯하다고 했다.
아직은 결혼 계획이 없다는 정 관장과 희기씨도 이들처럼 에코 결혼식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자 배씨가 “그럼 사진은 누가 찍지?” 했다. 모두 희기씨를 쳐다보자 “셀프 타이머가 있으니 걱정말라”며 하하 웃었다. 희기씨는 “요즘 카메라가 좋고, 컴퓨터의 편집기능이 훌륭해 열성만 있다면 일반인들도 얼마든지 직접 촬영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김씨가 “한 번뿐이어서 호화롭게 하기보다는 한 번뿐이니 뜻 깊은 결혼식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하자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은 웨딩촬영을 위한 옷을 만들고, 웨딩앨범을 촬영하면서 즐거웠고, 특히 환경보호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고 입을 모았다. 배씨는 개인컵을 들고 다니기 시작했고, 김씨는 신혼살림도 최대한 재활용품을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요즘 결혼식 준비하는 틈틈이 책상을 화장대로 리폼하는 작업을 하고 있단다. 또 화환 대신 축복미(쌀)를 받아 어려운 이웃을 돕기로 했다.
정 관장과 희기씨는 환경을 주제로 한 대형 전시회를 준비하고 있다. 17일부터 23일까지 이어질 전시회 1부에선 ‘실천하는 공존’을 주제로 우리 생활 속의 불필요한 자원 낭비를 규탄하는 실천적 기록을 전시할 예정이다. 에코 웨딩에 관련된 작품들도 소개한다. 24일부터 3월 1일까지 펼칠 2부에선 ‘새로운 각도에서의 공존’을 주제로 환경에 관한 새로운 시선이 담긴 예술가들의 예술혼을 조명하는 전시가 준비돼 있다.
김씨는 “이번 전시회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에코 웨딩에 관심을 갖게 되길 바란다”면서 특히 어른들의 생각이 바뀌어 결혼식에서 허식이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혜림 선임기자 ms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