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코너-김명호] 미국 보수의 분열
입력 2012-01-31 18:05
미국의 보수층은 분열하고 있다. 최소한 지금은 뭉치지 못하고 있다. 단지 아이오와, 뉴햄프셔, 사우스캐롤라이나 등 초반 3곳 경선의 1위가 모두 달랐기 때문만은 아니다. 경선 레이스에서 후보 각자의 유리한 지역에 따라 선두 주자는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게다가 지금까지의 경선 결과는 전체 판세에 큰 영향을 줄만큼 결정적이지도 않다.
그것보다는 보수층 기저에 흐르는 흐름을 유심히 살펴보면 보수 세력이 뭉치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워싱턴 정치를 조롱했던 피자 체인 CEO 출신 허먼 케인, 보수 강경세력 티파티가 후원한 미셸 바크먼 하원의원, 극보수 기독교 신앙을 내세운 릭 페리 텍사스 주지사 등은 차례로 경선을 포기했다. 정치 전문가들은 보수 세력들이 이 후보 저 후보를 지원하다 ‘아니다 싶으면’ 손을 떼는 결과라고 보고 있다. 뛰어난 후보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보수 세력이 분열돼 있다는 분석도 함께 내놓고 있다.
최근 흐름도 비슷하다. 밋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와 뉴트 깅리치 전 하원의장이 양강 구도를 형성하고 있고, 그 뒤를 릭 샌토럼 전 상원의원이 쫓고 있다. 세 사람의 지지층을 결정적으로 가르고 있는 것은 이념 성향이다. 보수 시각에서 보자면 롬니는 왼쪽, 깅리치는 중간, 샌토럼은 오른쪽에 위치한다. 보수층 내부에서도 뚜렷이 갈리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보수층을 결집시키지 못하는 큰 이유다.
2010년 11월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은 압도적 승리를 거뒀다. 당시 보수 세력은 민주당 정권을 심판하자는 구호로, 나라를 구하자는 외침으로, 미국민들의 마음을 얻었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중간선거에서 승리한 공화당 소속 주지사들이 임기 2년차에 들어서면서 중도 성향으로 바뀌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들이 새해 주의회 연설에서 밝힌 노동 세금 분야 등의 시정 방침이 중도 쪽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것이다.
2010년 선거의 주역은 초강경 보수 성향 유권자 단체인 티파티였다. 미 전역에서 티파티가 미는 후보는 거의 당선됐다. 그런데 이번 공화당 경선에서 티파티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티파티가 우세했던 지역에서 그들의 지지율은 하락하고 있다. 지난해 연방정부 부채상환 증액을 둘러싼 정치권 협상이 수개월간 난항을 겪으며 디폴트 직전까지 몰리자, 티파티 지지율은 하락하기 시작했다. 보수층 내부에서조차 세금문제를 절대 건드리지 못하게 하는 티파티 의원들의 비타협적이고 초강경한 태도를 못마땅하게 본 것이다.
반면 진보 진영은 뭉치고 있다. 진보의 핵심들은 오바마 대통령 취임 초부터 개혁 추진의 정도가 미흡하다며 매섭게 대통령을 비판해왔다. 건강보험이나 금융개혁 정책,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 같은 국가적 현안이 불거질 때마다 대통령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었다. 후보 시절 공약이나 개혁 이미지와 맞지 않는 정책을 쓴다는 비판에서부터 보수와 야합 또는 보수에 굴복이라는 표현까지 나왔다.
그러던 진보 진영의 핵심들이 대선국면이 시작된 지난해 말부터 입을 닫았다. 그 대신 시카고 재선본부와 백악관을 중심으로 조용히 뭉치고 있다. 백악관은 이미 선거 사령부로 개편됐다. 역대 대통령 중 재선을 앞두고 가장 낮았던 오바마 대통령의 지지율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것은 이런 흐름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지금 미국의 보수는 이념과 정체성을 따지면서 스스로 만들어놓은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이념적으로 갈리고 뭉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그 말 많던 진보는 조용히 모이고 있다. 선거를 10개월 앞둔 지금, 미국의 정치는 그렇게 흐르고 있다.
워싱턴=김명호 특파원 m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