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진홍] “알 이즈 웰”

입력 2012-01-31 18:04

“32년 동안 총장님은 끊임없이 학생들을 강간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평생 최선을 다해 강간할 수 있는지 궁금할 뿐입니다. 우리 모두 총장님을 본받아 변태의 깃발을 세계에 꽂읍시다.”

천재들만 다닌다는 인도 최고의 공대. 스승의 날 행사에서 1등 하려 물불 안 가리는 우간다 출신 학생이 대학 총장에게 잘 보이기 위해 한마디도 모르는 힌디어 연설문을 달달 외워 마이크를 잡고 이렇게 말한다. 순간 총장과 교수들은 좌불안석, 학생들은 포복절도한다. “다른 둥지의 알을 떨어뜨리고 자기 알을 낳는 뻐꾸기처럼 빨리 달리지 않으면 짓밟히게 된다”며 일등지상주의를 강요하는 총장의 비인간적 교육철학에 맞서 ‘세 얼간이’가 꾸민 일이다. ‘헌신’이란 표현을 ‘강간’으로 바꾸는 등 원고의 몇몇 단어를 변조했으나 우간다 학생은 이를 알지 못하고 그대로 암기해 연설한 것이다. 암기 위주 교육을 조롱하는 의미도 있다고 하겠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개봉된 인도 영화 ‘세 얼간이(3 Idiots)’의 한 장면이다. 삼총사는 이외에도 경쟁 위주의 숨 막히는 교육현실과 맞붙어 재치 있고, 유쾌한 도발을 이어간다. 이들은 “네 마음의 소리를 들어봐. 마음이 시키는 일은 주저 없이 하자”며 “알 이즈 웰(All is well의 인도식 발음: 다 잘 될 거야)”을 반복한다. 이들의 신념인 셈이다. 영화가 끝나면 삼총사가 얼간이인지, 아니면 총장을 비롯해 다른 사람들이 얼간이인지 생각하게 된다.

성적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청소년들, 그리고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취업 걱정하는 학생들, 대학을 졸업해도 길거리에서 헤매야 하는 청년백수들, 어렵게 취직해서는 살아남으려 팔꿈치로 동료들의 옆구리를 쳐야 하는 신입사원들. 우리나라나 인도나 이런 세태는 거의 같은 듯하다.

이 영화는 인도에서 811억원을 벌어들이며 역대 흥행 1위에 올랐다. 이 영화에 공감한 인도인들이 그만큼 많았다는 뜻일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인기를 누렸다. 개봉관은 적었지만 관객 수 40만명 이상을 기록한 데 이어 네티즌이 뽑은 2011년 올해의 영화 1위 자리를 차지했다. 우리나라 역시 적지 않은 학생들과 직장인들이 이 영화를 보고 속이 후련해지는 것을 느끼지 않았을까. 교육계는 물론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변신을 시도 중인 정치권이 지금부터라도 ‘세 얼간이’에 열광하는 이들의 마음을 헤아려줬으면 싶다.

김진홍 논설위원 j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