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출판] ‘어린이 십자군’ 55명 따뜻한 나라 찾았을까… ‘브레히트의 어린이 십자군’

입력 2012-01-31 17:59


‘브레히트의 어린이 십자군’/글 베르톨트 브레히트/김준형 옮김/새터

반가운 책이 나왔다.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어린이 십자군’이 한글판으로 나온 것이다.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누구인가. 20세기 독일이 낳은 최대 작가중 한명이다. 프란츠 카프카. 토마스 만과 비견된다. 1898년 독일에서 출생, 58년을 살다간 그는 시인 극작가 비평가로 수많은 업적을 남겼다.

특히 20세기 연극 운동에 미친 영향이 지대하다. 그가 확립한 서사극은 감정이입과 카타르시스(정화)로 대변되는 서구의 전통적 연극관을 해체했다. 리얼리즘에 바탕한 그의 서사극은 인간과 사회의 모순과 허위를 폭로하고 실상을 직시케 하는 데 탁월했다.

‘브레히트의 어린이 십자군’은 이미 유럽에선 유명한 책이다. 원제는 ‘kinderkreuzzug 1939’. 여기서 ‘1939‘는 독일군의 폴란드 침공으로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해다. 그해 3월 1일 아침 히틀러는 독일군에 폴란드 진격을 명령했다. 독일에 병합된 폴란드인 100만여명은 땅을 빼앗기고 추방당했다. 유대인들은 게토로 보내진뒤 아우슈비츠 등에서 학살됐다. 2차 세계대전으로 살해된 폴란드인의 수는 1000만여명. 그중 유대인은 300여만명이다. 인류 최대의 비극이었다.

브레히트는 이런 참상을 ‘어린이 십자군’에서 동시(童詩)로 녹여냈다. 왜 ‘어린이 십자군’일까. 중세 십자군 전쟁 때 유럽에선 ‘어린이 십자군’이란 기이하고 애처로운 사건들이 많았다. 프랑스에선 1212년 에탄누란 12세 목동이 십자군전쟁에 참여한다며 3만여명의 아이를 모아 예루살렘을 향해 행진하다 모두 실종됐다. 노예상인들에게 팔려갔다는 소문만 무성했다. 독일에서도 같은 해 니콜라우스란 10세 소년이 2만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알프스를 넘으려다 흩어져 소식이 끊겼다. 농노나 매춘부로 팔려갔으리란 추측만 나돌았다. 중세엔 이처럼 전쟁에 휘둘려 비참하게 돼버린 아이들이 많았다. 브레히트는 독일군의 폴란드 침공을 한탄하며 전쟁의 참화에 휩쓸린 아이들의 불행을 ‘어린이 십자군’으로 묘사한 것이다.

“교회다니는 아이들, 성당다니는 아이들, 엄마 아빠가 나치 당원인 아이 모두 엉∼엉∼엉∼ 큰소리로 울었어. 엄마 아빠가 공산주의자인 아이가 나지막이 연설을 했어, 살아남은 아이들은 따뜻한 나라로 꼭 가자고 약속했지.”

평화롭던 한 폴란드 마을. 독일군과 소련군이 양쪽에서 쳐들어오자 갑자기 마을사람들은 이념과 인종에 따라 갈라지고 찢어졌다. 마을은 처참히 박살나고 엄마 아빠를 다 잃은 아이 55명은 따뜻한 남쪽나라를 찾는다며 눈보라치는 광야속으로 길을 나섰다. 그러나 이후 그들의 행적은 아는 이가 없다. 중세의 ‘어린이 십자군’들처럼 소리소문 없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브레히트는 이 동시를 통해 이념이나 체제의 이름아래 자행되는 전쟁이 얼마나 끔찍하고 부질없는 짓인가를 고발하고 있다. 그는 모든 인간이 이념과 체제가 아닌 사랑과 휴머니즘의 이름아래 하나가 되길 갈망했다. 하나님의 피조물로 태어난 인간의 고귀함, 평등, 우애. 연대... 이런 것들이 이뤄지는 세상을 브레히트는 평생 꿈꿨다.

짧은 글이지만 책을 덮고나면 먹먹한 감동이 밀려온다. 오늘날도 이념과 사상, 체제와 가치관의 상이가 빚어내는 갈등과 분쟁이 지구촌에 얼마나 많은가. 오직 하나님의 사랑만이 이 모든 불행의 종식을 가져올 수 있음을 절감한다.

이 책은 아이들 뿐아니라 어른들도 읽어볼 만 하다. 우리나라엔 동화나 동시는 아이들만 읽는 것이란 편견이 있다. 하지만 책 문화가 발달한 유럽에선 어른동화책도 많이 발달했다. ‘어린 왕자’같은 책이 대표적이다. ‘브레히트의 어린이 십자군’도 이런 반열에 오를만한 명작이다.

박동수 기자 ds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