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형의 교회이야기] 하나님은 선하시다-④ 구구라 선배 이야기

입력 2012-01-31 18:00


지난 해 말, ‘구구라 선배’로부터 전화가 왔다. 근 20년 만이다. 1988년 국민일보 창간과 더불어 입사한 후 정치부로 배속되었다. 국회와 외무부 출입을 했다. 당시 기자실에는 각 신문사의 수많은 선배들이 있었다. ‘구구라 선배’는 그 많은 선배 기자들 중에서도 눈에 확 띄었다. 연합통신사의 구범회 기자. ‘구구라’라는 별명이 붙은 것은 오랜 웅변 연습으로 닦여진 입담이 타의 추종을 불허했기 때문. 기사를 쓸 때나, 놀 때나 열정을 지녔던 분으로 탁월한 선배 기자였다.

92년 초에 나는 일본으로 특파원 발령을 받았고 구 선배는 그해 말 연합통신 초대 중국특파원으로 베이징에 갔다. 이후 한번도 만나지 못했다. 더구나 내가 기독교 분야에서 오래 일했기에 출입처에서 우연히 마주칠 일도 없었다. 구 선배는 이후 정치권에 들어가 한나라당 부대변인, 이회창 전 총재특보 등을 역임했다. 용인시장 선거에 한나라당 후보로 나왔다가 낙선했다는 소식도 들었다.

그 ‘구구라 선배’가 연락해 온 것이다. “어이, 이태형씨. 잘 지냈어? 기독 칼럼 많이 쓰더구만….” 직감적으로 알았다. ‘선배가 하나님을 만났구나.’ 이전에도 가끔 다른 분으로부터 불현듯 연락이 올 때에는 대개 기독교로 회심한 경우가 많았다.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지금 하나님을 열심히 믿으려 하고 있어. 늦었지만 신학도 전공했고. 약간의 신비적인 체험도 했어. 암튼 빨리 만나자고.”

구 선배를 최근 서울 합정동의 한 음식점에서 만났다. 60세. 젊은 기상은 사라지고, 노년의 모습이 역력했다. 한쪽 눈이 부자유스러워 보였다. “당뇨 합병증으로 결국 실명했어. 괜찮아. 잃은 것도 있지만 얻은 것이 많아.” 용인시장 선거에서 떨어지고, 이후 국회의원 선거에서 공천을 받지 못하면서 울분을 삭이지 못했던 것도 건강이 악화된 원인이었다. 구안와사로 인해 입이 돌아간 적도 있었고 생명을 걸고 수술을 받기도 했다고 했다. “이대로 끝내 버리고 싶다”는 마음도 수없이 들었단다.

그 때, 절망 가운데 하나님을 만났다. 먼저 신앙에 입문한 아내가 그를 인도했다. 아내는 예수님이 수술복을 입은 남편을 꽉 안아주시는 꿈을 꿨다. “예수님이 당신을 살려 주실 거예요.” 그 말을 그대로 믿었다.

이후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다. 서울 방배동의 코헨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하나님을 알아가면서 자신이 과거 미션스쿨인 숭실중·고등학교에 다닌 이유를 깨닫게 됐다. 모든 것이 섭리였다. 그는 뛰어난 중국통. 한문에도 능통하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중국을 봤다. 그리고 중국내 경교의 전래를 연구, ‘예수, 당태종을 사로잡다’는 제목의 원고도 썼다. 지금 모 출판사가 이 원고를 검토 중이다.

‘구구라 선배’를 인도, 추적하시는 하나님은 선하시다! 그가 말했다. “생각해보니 다 지나가더라고. 지금 행복해. ‘뜻 모르고 사는 것 보다, 뜻 알고 죽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이 들어….”

종교부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