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윤복희 (1) 생사의 갈림길서 들려온 “복희야 안심하거라”
입력 2012-01-31 17:51
“끼이익∼” 달리던 차가 급정거하면서 내는 날카로운 소리가 고막을 찢는 듯했습니다. 차가 몇 바퀴를 굴러 중앙 분리대를 넘어 역주행선에 뒤집힌 채로 드러누웠습니다.
“복희야, 많이 놀랐지? 안심해라. 이건 단순한 사고가 아니란다.”
가는 빗줄기를 뿌리는 새벽하늘에서 밝은 빛이 내 살을 파고 스쳐갔습니다. 뽀얀 안개 같은 게 내 온몸을 감쌌습니다. 1976년 2월 27일 새벽. 전주 공연을 마치고 대구로 이동하던 중 고속도로에서 내가 타고 있던 자동차가 큰 사고를 냈습니다. 차는 완전히 망가졌지만 정신은 멀쩡했습니다. 사고 과정이 너무나 생생했습니다. 그러면서 내 귀에는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아, 하나님이 내게 들어오셨구나.’
나는 분명히 느끼고 있었습니다. 나는 기도했습니다. 그때까지 나는 기도를 어떻게 하는지, 기도가 무엇인지 잘 몰랐습니다. 그냥 두 손을 맞잡고 눈을 감았습니다. 순찰차와 구급차, 견인차가 연이어 달려오고 사고 주변은 전쟁터가 된 듯했습니다.
나는 사람들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자동차 밖으로 나왔습니다. 나도 모르게 비 내리는 고속도로에서 무릎을 꿇었습니다. 뭔가 모를 힘이 나를 그렇게 이끌었습니다.
“윤복희다! 살아있다.” “윤복희가 멀쩡하다!”
사람들의 외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기적이라는 말이 여기저기서 들렸습니다. 갑자기 눈물이 났습니다. 왠지 모를 눈물이 마구 솟구쳤습니다. 그러면서 마음이 따뜻해졌습니다. 작은 촛불 하나가 내 몸속을 밝히는 듯했습니다. 나는 부축을 받으며 경찰차로 바꿔 타고 대구로 갔습니다. 차창 밖으로 겨울의 끝을 알리는 비가 을씨년스럽게 계속 내리고 있었습니다.
호텔 방으로 들어서니 오전 11시쯤 됐습니다. ‘분명 대형 사고였는데…’ 내가 다치지 않았다는 게, 아니 살아 있다는 게 아무래도 믿기지 않았습니다. 누구에겐지 모를 감사가 마음속 가득 밀려들었습니다. 창문으로 바깥을 내다봤습니다. 세상이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나는 매무새를 대충 정리하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아무나 붙들고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비를 맞으며 걸어서 공연장까지 갔습니다. 젖은 몸 그대로 무대에 올랐습니다. 춥지 않고 오히려 더웠습니다. 공연장은 입추의 여지없이 꽉 찼습니다.
이제 공연이 시작됩니다. 그런데 갑자기 ‘쿵’ 하는 소리가 나더니 갑자기 극장 안이 깜깜해졌습니다. 예기치 못한 정전에 공연 관계자들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우왕좌왕했습니다. 누군가가 횃불을 들고 와 무대를 밝혔습니다. 마음속으로 분위기에 맞는 노래를 오프닝 곡으로 선정했습니다.
한데 이게 무슨 일입니까. 막상 무대에 올라선 난 다른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무반주로 부르는 나의 노래가 어두운 극장 안에 메아리쳤습니다. 후두암 판정을 받아 목소리를 제대로 내기 어려웠던 내가 부르는 노래는 ‘어메이징 그레이스’였습니다.
사람들이 열광했습니다. 내가 부르는 노래에 나 스스로 감동되었습니다. 참으로 많은 유행가를 불러왔던 내가 처음으로 찬송가를 불렀습니다. 우리말로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을 부르자 많은 사람들이 따라 불렀습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나는 윤복희입니다. 독자 여러분, 아시죠? ‘여러분’을 부른 가수이자 뮤지컬 배우 윤복희 아시죠? 우리나라에 미니스커트를 유행시켰다고 많이 알려져 있죠. 나는 서울 온누리교회 권사로서 언제나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답니다.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이렇게 36년 전 일어났던 사고부터 밝히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랍니다. 그때 나는 다시 태어났습니다.
정리=정수익 선임기자 sag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