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새 정강·정책] ‘정치’ 대신 ‘박근혜式 복지’ 전면에… 6년만에 싹 바꿨다

입력 2012-01-30 19:13


한나라당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은 30일 ‘국민과의 약속(10대 약속, 23개 정책)’으로 명명된 새 정강·정책 개정안이 발표되자 “대단히 중요한 날” “(우리 당이) 근본적으로 변화하는 날”이라고 표현했다. 차기 대권주자로서 자신의 국가경영 청사진을 발표한 것인 양 최고의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6년 만에 개정된 이 정강·정책이 제대로 구현될 경우 민주정의당(전두환·노태우 정부)→민주자유당(노태우·김영삼 정부)→한나라당(이명박 정부)으로 이어져온 30년 역사의 당 정체성(부자·보수정당)은 박 위원장 언급처럼 “엄청난 변화”를 맞게 될 것이란 평가가 조심스레 나온다.

가장 큰 변화는 정강·정책 강령 1조에 ‘정치(미래지향적 선진정치)’ 대신 ‘복지(평생맞춤형 복지)’를 전진배치한 점이다. 이는 반목과 대립으로 얼룩진, 그래서 국민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는 구태정치를 지양하고 ‘국민 행복’을 최우선 지향점으로 설정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박 위원장은 이날 라디오 정강정책 연설에서도 “모든 의사결정 과정에서 국민 행복을 최우선 기준으로 삼겠다”고 했다. 평생맞춤형 복지는 그가 표방해왔던 복지국가 모델이다.

복지에 밀린 정치는 10대 약속 중 9순위로 밀리면서 ‘선진’이 빠진 ‘미래지향적 정치’로 수정됐다. 그동안 논란을 불러온 ‘보수’ 용어는 ‘보수적 가치’란 표현으로 명맥만 유지했다. 전문에서 ‘대한민국의 비약적 발전을 주도해온 발전적 보수’라는 문구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법치라는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보수적 가치’로 대체된 것이다. ‘보수’를 그 가치로서는 지키되, 진보적 색채도 시대적 변화와 국민적 여망에 부합하는 것이라면 적극 포용하는 ‘중도보수당’으로 변신하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특히 남북분단 이후 이념 논쟁과 좌우대결의 진원이었던 통일·외교·국방 분야에서 ‘실용주의’와 ‘굳건한 안보’라는 기존 노선이 ‘평화 지향적 균형외교’ 및 ‘유연한 대북정책’으로 완전히 바뀌었다. 북한 체제의 전환과 개방, 인권이 새 정강·정책에서 사라지거나 완화된 것이다.

‘좌클릭’을 통한 이명박 정부와의 차별화는 정책 분야에서도 그대로 담겼다. ‘큰 시장 작은 정부’에서 ‘강한 정부’로 바뀐 것이 그것이다. 시장의 자율성을 보장하면서 정부 개입을 최소화하겠다는 기존 정책은 폐기하고 정부가 실패한 시장에 개입함으로써 헌법 119조2항의 ‘경제 민주화’를 실현하겠다고 명확히 했다. 새 개정안에는 이명박 정부를 상징하는 ‘선진화’라는 용어도 사라졌다.

한나라당이 정치적 선명성을 명분삼아 옛 전문에 명시했던 선동적·집단적 용어와 가치들(집단이기주의, 분배지상주의, 포퓰리즘 등)이 삭제된 것도 눈에 띈다. 권영진 의원은 브리핑을 통해 “이념적·분열적 구호나 선언적 표현을 조정하거나 폐기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실현 여부다. 박 위원장은 “약속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약속 자체가 아니라 약속의 실천”이라고 강조했다. 원희룡 의원은 트위터를 통해 “재벌개혁론자, 경제민주화론자를 비례대표 상위순번으로 영입해야 한다”며 ‘실천 의지’를 강조했고 정두언 의원은 “지금 재벌개혁 화두를 야당이 쥐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전여옥 의원은 유연한 대북정책에 대해 “불쌍한 가족 버리고 도망치는 아비도 이보다는 낫겠다”고 막말을 했다. 새 옷 입고 꽃단장한 박 위원장의 총선·대선 가도가 순탄치 않을 수도 있는 조짐들이다.

정재호 기자 j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