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강석 목사의 시편] 광야의 빈정거림을 넘어 가나안의 세계로

입력 2012-01-30 18:11


우리 사회는 비판이 있을 때 발전한다. 정반합의 토론이 활발할 때 전진한다. 고인 물은 썩고, 오랫동안 묶여진 수레바퀴는 잘 굴러가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비판은 우리 사회의 윤활유와 같다. 무조건 잘한다, 잘한다고 아첨만 하면 사회는 정체되고 병든다. 그러므로 격려와 칭찬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매서운 회초리를 들거나 예리한 비판이 필요할 때도 있다. 목회도 마찬가지다. 부족하지만 나는 신정주의 목회를 추구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는 신정주의 목회를 아무리 잘한다고 해도, 그것이 외면상으로는 담임목사를 중심으로 한 일원화 현상으로 나타나고 때로는 개인 독재와 같은 컬트문화 현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다보면 목회자도 인간이기 때문에 독재자로 군림하게 되고 한쪽만 보게 되어 있다. 그래서 쓴 소리보다는 단 소리를 듣기 좋아한다. 그것이 인간의 타락한 본성이다. 그래서 내가 원하건 원치 않건 간에 가끔 교인들 가운데 비판하며 쓴 소리를 하는 것을 본다. 하지만 그 순간은 듣기가 싫어도 그 비판 때문에 부족함을 깨닫고 발전하게 된다. 그런데 우리 교회와 사회를 병들게 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대안도 없는 빈정거림과 조롱의 문화다. 이것은 예리한 책망이 아니다. 날카로운 비판도 아니다. 대안이나 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빈정대고 끌어내린다. 무시하고 조롱한다. 위선과 가식의 가면을 둘러 쓴 꼼수다.

이 시대의 인터넷 문화는 익명성으로 뒤에 숨어서 공격하고 조롱하는 일들이 너무 많다.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은 채, 트위터로 거짓되고 왜곡된 소문을 마치 사실인 것처럼 퍼뜨린다. 그 대상은 연예인을 비롯해서 정치인, 관료, 훌륭한 교회 지도자 등 무차별적이다.

심지어는 대통령과 도지사를 향해서도 사실을 왜곡하며 빈정거리고 조롱한다. 이것은 손에 칼만 안 들었지 인터넷을 통한 인격 살인이며 범죄다. 이러한 잘못된 인터넷상의 빈정거림과 조롱 문화로 얼마나 많은 연예인들이 갈등하다 자살하여 죽었는가. 그래서 나는 인터넷 실명제를 주장하는 사람이다. 우리 사회의 성숙한 발전을 위해서는 천박한 빈정거림, 꼼수문화가 사라져야 한다.

교회는 더욱 그렇다. 성경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얼마나 모세를 빈정거리고 원망했는가. 대안도 없이 무조건 끌어내리고 불평했다. 그러나 그들은 다 망했다. 하나님이 거룩한 신정주의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그들을 처단했다. 우리 교계나 교회도 마찬가지다. 거룩한 생명과 영광의 공동체로 성숙하기 위해서는 빈정거림 문화가 사라져야 한다. 사람을 죽이기 위한 독설이 아니라 사랑과 생명의 비판을 해야 한다.

또 내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이어야 한다. 빈정거림과 꼼수는 공동체를 분열시키고 화를 부른다. 그러나 사랑과 생명의 언어는 상처를 치유하고 하나 되게 한다. 그대는 광야에서 빈정거리고 꼼수나 부리다가 인생의 끝을 맞이할 것인가, 사랑과 생명을 선택하여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으로 향할 것인가.

<용인 새에덴교회>